현상
필름은 어둠 속에서 현상된다. 재민은 그 사실을 좋아했다. 빛으로 찍은 것을 빛이 없는 곳에서 꺼낸다는 것. 욕실 문틈을 검은 테이프로 막고, 현상 탱크에 약품을 붓고, 정확히 구 분 삼십 초를 재는 동안 그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볼 수 없는 채로 기다리는 시간. 그것이 그가 사진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수요일 밤이었다. 하은은 야근이었다. 그는 스물넉 장의 필름을 물에 헹구고, 욕실 봉에 걸어 말리고, 그동안 부엌에서 혼자 맥주를 마셨다. 식탁 위에 카메라가 있었다. 일요일 이후로 그는 렌즈 캡을 덮지 않았다.
필름이 마르자 그는 스캐너에 밀어 넣었다.
첫 열아홉 장은 평범했다. 여덟 개의 빛의 줄. 창밖의 감나무. 하은의 뒷모습. 커피 그라인더. 그는 그것들을 빠르게 넘겼다. 스무 번째 장에서 손이 멈췄다.
회색 셔츠. 채운 단추 세 개. 그리고 그 아래의 두 점.
화면 속에서 그것은 그가 뷰파인더에서 본 것보다 선명했다. 얇은 천이 어떤 각도로 밀려 올라갔는지, 그 아래의 살이 어떤 밀도로 단단해져 있었는지. 그는 확대했다. 필름의 입자가 거칠게 드러났다. 입자 속에서 그녀의 젖꼭지가 천을 밀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딱딱해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어야 했다. 연인의 몸이었다. 삼 년 동안 본 몸. 그러나 그가 지금 느끼는 것은 그녀의 몸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 사진을 찍은 순간에 대한 것이었다. 그가 뷰파인더 너머에서 그것을 발견한 순간. 그녀가 자기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고 있으면서 움직이지 않았던 순간. 그가 보고, 그녀가 보여지고, 그 사이에 유리 한 장.
스물한 번째 장. 옆얼굴. 눈을 감은 얼굴.
스물두 번째 장. 조리대를 잡은 손.
스물세 번째 장.
그는 오래 그것을 봤다. 그 사진에서 하은은 카메라를 보고 있지 않았다. 창 쪽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얼굴에 그가 처음 보는 것이 있었다. 부끄러움이 아니었다. 부끄러움을 지나서 그 너머에 있는 것. 열린 문 같은 것. 그는 그 표정에 이름을 붙이려 했고, 붙이지 못했다.
그는 맥주를 다 마시고 화면을 끄지 않은 채로 하은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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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나야?"
열한 시 반. 하은은 코트도 벗지 않고 화면 앞에 서 있었다. 스물세 번째 장이 열려 있었다. 재민은 그녀의 뒤에 서서 그녀가 자기 얼굴을 보는 것을 봤다.
"너야."
"이런 표정을 했어?"
"했어."
하은은 화면을 향해 몸을 조금 더 기울였다. 코트 자락이 그의 팔에 스쳤다. 그녀는 오래 봤다. 그러다 손을 뻗어 스크롤을 올렸다. 스물두 번째. 스물한 번째. 스무 번째.
그녀가 멈췄다.
회색 셔츠 아래의 두 점. 그녀는 그것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재민은 그녀의 귀가 붉어지는 것을 봤다. 귓불부터, 귀 뒤의 부드러운 곳까지.
"너 그때."
그가 말했다. 마저 말하지 않았다.
"응."
"젖어 있었지."
하은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응."
"내가 찍어서."
"몰라."
"몰라?"
"찍는 게 아니라."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소리가."
"소리."
"셔터. 그 소리가 나면." 그녀는 말을 고르는 사람처럼 천천히 말했다. 편집자였다. 남의 문장을 고치는 것이 직업이었고, 그래서 자기 문장 앞에서는 더 오래 멈췄다. "뭔가가 나를 확정하는 느낌이 들어. 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가 결정되는 느낌. 되돌릴 수 없는."
"그게 좋아?"
"몰라." 그녀는 이제 그를 봤다. "무서운데. 무서운데 좋아. 보이는 게. 아니, 보여지는 게."
"내가 보는데."
"너인데."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너 아닌 것 같아. 카메라는 그냥 봐. 아무것도 생각 안 하고. 판단도 없고. 그냥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떻게 있는지, 그대로."
재민은 오래 침묵했다. 그러다 말했다.
"나도."
"뭐가."
"나도 그랬어. 찍으면서."
하은은 기다렸다.
"보는 게." 그는 말을 찾았다. 그도 편집자는 아니었지만 지금 이 문장은 틀리면 안 되는 문장 같았다. "네가 보여지고 있다는 걸 아는 채로 거기 있는 걸 보는 게. 뷰파인더 속에서. 그게... 만지는 것보다."
그는 끝까지 말하지 못했다. 그러나 하은은 끝까지 들었다. 그녀의 얼굴에 스물세 번째 장의 표정이 다시 나타났다. 열린 문.
"찍어 줘."
그녀가 말했다.
"지금?"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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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이었다. 그가 그렇게 정했다. 필름은 기다려야 하지만 디지털은 바로 볼 수 있었고, 그는 그녀가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기가 어떻게 보이는지를.
침실 조명은 스탠드 하나였다. 노란 빛. 하은은 침대 끝에 앉아 있었다. 코트는 벗었다. 블라우스와 검은 스커트. 스타킹. 야근한 사람의 옷. 재민은 침대에서 세 발짝 떨어진 곳에 서서 카메라를 들었다.
"어떻게 해."
"아무것도. 그냥 있어."
찰칵. 디지털의 셔터 소리는 필름보다 가볍고 건조했다. 그러나 하은의 어깨는 똑같이 반응했다. 아주 조금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벗어도 돼?"
"네가 원하면."
그녀는 블라우스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위에서부터. 천천히. 그는 셔터를 눌렀다. 단추 하나에 한 번. 그녀는 셔터 소리를 듣고 다음 단추로 넘어갔다. 마치 소리가 허락인 것처럼. 블라우스가 어깨에서 미끄러졌고, 그 아래의 검은 브래지어가 나왔고, 그녀는 등 뒤로 손을 돌려 그것을 풀었다.
찰칵.
젖가슴이 드러났다. 노란 빛 속에서 그것은 사진처럼 보였다. 이미 사진처럼. 왼쪽 가슴 아래의 점. 그는 초점을 그 점에 맞췄다. 그녀는 자기가 어디를 찍히는지 알았다. 그녀의 유두가 단단해졌다. 그가 손대지 않았는데. 소리만으로.
"봐."
그가 카메라의 뒷면 화면을 그녀 쪽으로 돌렸다. 그녀는 봤다. 자기 젖가슴을. 단단해진 유두를. 그 위의 빛을.
"이렇게 보여?"
"이렇게 보여."
그녀의 손이 자기 가슴 위로 올라갔다. 처음에는 가리려는 것처럼. 그러나 손은 가리지 않았다. 손바닥이 유두 위를 스쳤고, 그녀의 숨이 흔들렸다. 그는 셔터를 눌렀다.
"계속해."
그녀는 계속했다. 스커트의 지퍼를 내렸다. 스타킹을 벗었다. 그 아래에 검은 속옷. 그녀는 침대 위로 몸을 조금 물렸고, 무릎을 세웠고, 그를 봤다. 그가 아니라 렌즈를.
"벗을게."
"응."
속옷이 발목을 지나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은은 무릎을 세운 채로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무릎은 붙어 있었다. 그는 셔터를 눌렀다. 그녀의 무릎이 천천히 벌어졌다.
그는 숨을 멈췄다.
노란 빛 속에서 그녀는 열려 있었다. 검은 털. 그 아래의 젖은 살. 음순이 이미 부풀어 벌어져 있었고, 그 사이가 빛을 받아 번들거렸다.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옷을 벗고 소리를 들은 것뿐인데.
"봐."
그녀가 말했다. 이번에는 그녀가.
그는 화면을 돌리지 않았다. 그녀는 그것을 원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냥 봤다. 뷰파인더를 통해서. 초점을 맞췄다. 축축하게 벌어진 그녀의 입구에. 두 개의 상이 하나로 겹쳐졌다.
찰칵.
하은의 몸이 떨렸다. 그녀는 손을 내렸다. 자기 허벅지 안쪽을 지나, 그 사이로. 중지가 젖은 음순을 갈랐다. 그녀는 자기 음핵을 찾았고, 찾자마자 소리를 냈다. 낮은 소리. 그가 아는 소리였지만 이렇게 빨리 들은 적은 없었다.
"이렇게." 그녀가 말했다. 눈은 렌즈에 있었다. "이렇게 하는 거 보여?"
"보여."
찰칵.
그녀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원을 그리며. 그는 그것을 알았다. 그녀가 혼자 할 때 어떻게 하는지. 그러나 이렇게 본 적은 없었다. 이렇게 정면에서, 빛 아래에서, 그녀가 자기가 보여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하는 것을. 그녀의 다른 손이 자기 젖가슴을 잡았다. 유두를 꼬집었다. 그녀의 허리가 들렸다.
"재민아."
"응."
"찍어. 계속."
그는 찍었다. 셔터 소리가 날 때마다 그녀의 손가락이 빨라졌다. 셔터 소리가 날 때마다 그녀의 안에서 무언가가 더 흘러나와 침대 시트를 젖혔다. 그는 그것을 봤다. 확대해서. 그녀의 손가락 두 개가 자기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나오는 것을. 젖은 채로 다시 음핵으로 올라가는 것을.
그는 자기 손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카메라를 든 손이. 그는 세 발짝 떨어진 곳에 그대로 서 있었다.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면 안 될 것 같았다. 그것이 지금 그가 해야 하는 일 같았다. 거기 서서, 보는 것.
하은은 그것을 알았다. 그가 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가 보기만 한다는 것을. 그것을 안 순간 그녀의 얼굴이 변했다. 스물세 번째 장의 표정. 그 너머의 표정. 그녀는 렌즈를 똑바로 봤고, 손가락을 멈추지 않았고, 말했다.
"보고 있어? 나 이렇게 되는 거. 다 보고 있어?"
"다 보고 있어."
찰칵.
그녀는 무너졌다. 렌즈를 보면서. 허리가 들리고 허벅지가 떨리고 손가락은 멈추지 않았고 그녀의 안에서 투명한 것이 흘러나와 시트 위로 번졌다. 그녀의 입이 벌어졌다. 소리가 나왔다. 그가 삼 년 동안 들은 어떤 소리보다 큰 소리. 그는 셔터를 눌렀다. 눌렀다. 눌렀다. 그녀가 다 무너지고 침대 위에 늘어질 때까지.
그러고 나서 그는 카메라를 내렸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무릎도. 그는 바지 안에서 자기가 얼마나 딱딱해져 있는지, 얼마나 젖어 있는지 그제야 느꼈다. 한 번도 만지지 않았는데. 그녀도, 자기도.
"이리 와."
하은이 말했다. 목소리가 없었다. 숨만 있었다.
그는 갔다. 그녀가 그의 바지를 내렸다. 그녀의 손이 그를 잡자 그는 소리를 냈다. 그녀의 손은 젖어 있었다. 자기 것으로. 그 손이 그를 감싸고 두 번, 세 번 움직였을 때 그는 무너졌다. 그녀의 손 안에서, 그녀의 배 위로, 그녀의 왼쪽 가슴 아래의 점 위로. 카메라를 든 채로 세 발짝 떨어져서 보고만 있던 남자가.
그녀는 그를 안았다. 젖은 배로. 그는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나 이상해."
그가 말했다.
"아니야."
"만지지도 않았는데."
"알아." 그녀는 그의 머리를 쓸었다. "봤잖아."
그는 오래 그렇게 있었다. 카메라는 침대 옆 바닥에 있었다. 렌즈가 위를 향한 채로. 그 안에 백 장 가까운 사진이 들어 있었다. 그가 보고, 그녀가 보여진 백 장.
"지워야 해."
그가 말했다.
"왜."
"누가 보면."
하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침묵을 들었다. 그 침묵은 길었고, 그 안에 무언가가 있었다.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그날 밤에는 묻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