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눈

이 층집은 골목 끝에 있었다. 경리단길에서 두 번 꺾어 들어가면 나오는, 간판 없는 붉은 벽돌집. 문에는 작은 황동판이 하나 있었고 아무것도 새겨져 있지 않았다. 일요일 오후 두 시. 햇빛이 골목의 반쪽만 비추고 있었다.

"차만 마시는 거야."

하은이 말했다. 자기에게 하는 말이었다.

"차만 마시는 거야."

재민이 따라 말했다.

문이 열렸다. 서윤이었다. 흰 셔츠. 그녀는 두 사람을 안으로 들였다.

응접실은 그가 상상한 것과 달랐다. 어둡지 않았다. 남쪽 창으로 빛이 들어왔고, 벽은 짙은 붉은색이었지만 그 위에 사진이 여러 장 걸려 있었다. 흑백. 풍경. 나무. 물.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벨벳 의자가 여기저기 있었고, 그 의자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열 명쯤. 차를 마시고, 조용히 말하고, 웃고 있었다. 평범한 일요일 오후의 모임처럼.

"소개할게요."

서윤이 말했다.

그녀는 한 사람씩 소개했다. 이름만. 성도 직업도 없이.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를 조금씩 했다. 준호와 혜란은 오십 대 부부였고 이곳에 팔 년을 다녔다. 소라는 스물여덟이었고 지난 겨울 처음 붉은 끈을 맸다고 했다. 미주는 은세공을 했고, 손가락에 반지가 없었고, 눈이 곧았다. 그리고 도현.

도현은 창가에 서 있었다. 삼십 대 중반. 키가 컸고, 말이 적었고, 건축을 한다고 했다. 그가 하은과 눈을 마주쳤을 때 그는 고개를 조금 숙였다. 그것이 다였다.

차가 나왔다. 사람들은 다시 자기들의 대화로 돌아갔다. 재민은 준호와 카메라 이야기를 하게 됐다. 준호도 필름을 했었다. 하은은 소라와 미주 사이에 앉았다.

"처음이 제일 무섭죠."

소라가 말했다.

"무서워요?"

"무섭죠. 근데 그 무서운 게." 소라는 웃었다. "그게 좋더라고요."

미주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대신 하은을 봤다. 하은은 그 시선을 느꼈다. 미주의 눈은 서윤의 눈과 비슷했다. 판단 없이 다 보는. 그러나 서윤보다 더 가까웠다.

"하은 씨는."

미주가 말했다.

"네."

"보여지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네요."

하은은 무슨 말인지 물으려다 말았다. 알았기 때문이다.

그때 하은이 웃었다. 소라가 무슨 말을 했고, 그것이 웃겨서. 웃으면서 고개를 조금 젖혔다. 목이 드러났다. 그녀는 그 순간 창가에서 오는 시선을 느꼈다.

도현이었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차를 들고 서 있었다. 그러나 그의 눈이 그녀의 목에 있었다. 웃느라 젖힌 목에. 그 시선은 짧았다. 이 초쯤. 그가 다시 눈을 돌렸다. 그것이 다였다.

그런데 하은의 몸이 반응했다.

그녀는 그것을 즉시 알았다. 셔터 소리가 날 때 오는 것. 몸 어딘가가 확정되는 느낌. 그것이 왔다. 카메라 없이. 재민 없이. 재민은 방 반대편에서 준호와 필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를 보지도 않았는데. 그의 눈이 아닌 다른 눈이 그녀의 목을 봤고, 그녀는 젖었다.

그녀는 찻잔을 들었다. 손이 떨렸다.

"괜찮아요?"

소라가 물었다.

"네. 차가 뜨거워서."

미주가 그녀를 봤다. 미주는 알았다. 하은은 미주가 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이 그녀를 더 젖게 했다.

---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은은 말을 하지 않았다. 재민은 그것이 피로라고 생각했다. 낯선 사람 열 명. 두 시간. 그도 피곤했다.

"어땠어. 빼고 싶은 사람 있어?"

"없어."

"다 괜찮았어?"

"응."

"미주 씨는 좀 세던데."

"응."

집에 도착해서 그녀는 코트를 벗고 소파에 앉았다. 재민은 물을 마시러 부엌으로 갔다. 그가 돌아왔을 때 그녀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손을 무릎에 올리고. 그가 아는 자세였다. 그녀가 무언가를 말하려고 할 때 하는 자세.

"재민아."

"응."

"나 오늘."

그는 기다렸다.

"도현 씨가."

그 이름이 나오자 그의 몸 어딘가가 굳었다. 그는 그것을 느꼈고, 느낀 것을 부끄러워했다.

"도현 씨가 뭐."

"나를 봤어. 잠깐. 이 초쯤."

"그래서."

"그래서." 그녀는 무릎을 봤다. "젖었어."

방이 조용해졌다.

"너 아닌데."

그녀가 말했다.

"너 아닌 사람이 봤는데. 카메라도 없었는데. 너는 저쪽에 있었는데."

재민은 물컵을 들고 서 있었다.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려놓지 못했다. 손이 컵을 잡고 있는 것이 지금 그를 서 있게 하는 유일한 것 같았다.

"그게 무슨 뜻이야."

"몰라. 그래서 말하는 거야."

"내가 없어도 되는 거야?"

"아니."

"카메라 들고 있는 사람만 필요한 거야? 누구든 상관없어?"

"재민아."

"아니, 물어보는 거야. 진짜로." 그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그는 그것을 눌렀다. 누르지 못했다. "네가 보여지는 게 좋은 거면. 누가 보는지는 상관없는 거면. 그럼 나는 뭐야. 나는 그냥 처음에 셔터 누른 사람이야?"

"그런 거 아니야."

"그런 거 아니면 뭐야."

"몰라!"

그녀도 소리를 냈다. 처음이었다. 삼 년 동안 그녀가 그에게 소리를 낸 것은. 그녀는 자기 소리에 놀란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모르겠어. 나도 무서워. 나도 그게 뭔지 모르겠어. 그래서 말하는 거야. 숨기면 거짓말이 되니까. 서윤 씨한테 정직했던 것처럼 너한테도 정직하려는 거야. 그런데 네가 그렇게."

그녀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재민은 물컵을 내려놓았다. 소리가 났다. 그는 코트를 다시 들었다.

"어디 가."

"걸을게."

"재민아."

"조금만. 조금만 걸을게."

문이 닫혔다.

---

그녀는 소파에 오래 앉아 있었다. 창밖이 어두워졌다. 건너편 건물의 창들이 켜졌다. 그녀는 그것을 보지 않았다.

그러다 침실로 갔다. 옷을 벗지 않고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봤다.

도현의 눈.

그녀는 그것을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생각하지 않으려 하는 것은 생각하는 것이었다. 이 초. 그녀의 목에 닿은 시선. 그것이 왜 그렇게 작용했는지. 재민의 눈은 삼 년 동안 그녀를 봤다. 사랑하는 눈. 아는 눈. 그런데 도현의 눈은 그녀를 모르는 눈이었다. 그녀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문장을 고치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그냥 목을 본 눈. 웃느라 젖힌 목만.

그 눈에는 그녀가 없었다. 그녀의 목만 있었다.

그것이 그녀를 젖게 했다. 자기가 없어지는 것. 보여지는 것만 남는 것.

그녀의 손이 스커트 아래로 갔다. 그녀는 자기가 그렇게 하는 것을 멈추지 못했다. 속옷 위로 손을 댔다. 젖어 있었다. 오후부터. 두 시간 동안 차를 마시면서, 택시를 타면서, 소파에 앉아서, 재민이 소리를 낼 때도. 젖어 있었다.

그녀는 속옷을 옆으로 밀고 손가락을 넣었다.

빠르게. 부드럽지 않게. 벌을 주는 것처럼. 그녀는 음핵을 문지르면서 도현의 눈을 생각했다. 그 눈이 그녀의 목이 아니라 여기를 본다면. 그녀가 이렇게 하는 것을 본다면. 아무것도 모르는 눈이. 그녀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그냥 이것만 본다면.

그녀는 소리를 냈다. 베개에 얼굴을 묻고.

그리고 그때 재민이 떠올랐다. 도현의 눈을 생각하는 동안, 그 눈 뒤에, 그 눈 너머에, 재민이 있었다. 방 반대편에서. 그녀를 보지 않으면서 보는. 그녀가 다른 눈 앞에서 이렇게 되는 것을 아는. 그 사실이 그녀를 무너뜨렸다. 도현의 눈이 아니라. 그 눈 앞에서 그녀가 어떻게 되는지를 재민이 안다는 것이.

그녀는 무너졌다. 옷을 입은 채로. 손가락 두 개를 자기 안에 넣은 채로. 베개에 소리를 묻으면서.

그러고 나서 울었다.

무엇 때문에 우는지 몰랐다. 죄책감인지. 두려움인지. 아니면 자기가 방금 안 것 때문인지. 그녀는 눈물이 베개를 젖히는 것을 느꼈다. 손가락은 여전히 젖어 있었다. 두 가지 젖음. 그녀는 그것을 닦지 않았다.

현관문 소리가 났다. 열한 시였다.

재민은 침실 문 앞에 서 있었다. 불을 켜지 않았다. 그녀는 어둠 속에서 그의 윤곽을 봤다.

"미안."

그가 말했다.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목소리가 없었다.

"내가 무서웠어."

그가 말했다. 그리고 들어오지 않았다. 문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 그날 밤 두 사람은 같은 침대에서 잤지만 닿지 않았다. 등을 돌린 것도 아니었다. 그냥 닿지 않았다. 그 사이에 이 미터쯤 되는 거리가 있는 것처럼. 바닥에 선이 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