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불

샤워기 물이 뜨거웠다. 세라는 벽에 손을 대고 서 있었다. 흙이 발밑으로 흘러갔다. 갈색 물. 그리고 맑은 물.

준호가 문틈으로 봤다. "괜찮아?"

"한 번 더."

"뭐?"

"한 번 더 하자. 오늘."

"다리 떨리잖아."

"그래서."

준호가 문을 닫았다. 다시 열었다. "이번엔 진짜 이길 거지."

"응."

"어디로 갈지 알 것 같은데."

"모를 거야."

22시 40분. 다시 현관.

세라는 젖은 머리를 다시 묶었다. 후드는 벗었다. 검은 티셔츠. 더 어둡게. 더 빠르게.

"10분." 준호가 말했다.

"10분."

이번엔 뒤에서 숨을 대지 않았다. 세라가 먼저 뛰었다.

계획이 있었다. 아까 그는 오른쪽 능선으로 올라갔다. 높은 데서 빛을 쏘면 넓게 보인다. 사냥꾼의 생각. 그러니까 이번엔 아래. 물소리 쪽. 계곡은 금지지만 계곡 옆은 아니다. 물소리가 그녀의 발소리를 덮어줄 것이다. 그가 빛을 쏘면 경사 밑은 그림자가 된다.

30분. 버티면 이긴다.

이기면 뭘 받는지 종이에 없었다. 그냥 이기고 싶었다.

물소리가 커졌다. 발밑이 달라졌다. 낙엽에서 돌로. 돌에서 젖은 돌로.

'너무 왔어.'

멈췄다. 왼쪽으로 몸을 틀었다. 경사를 따라 옆으로.

발이 없어졌다.

돌이 아래로 빠졌다. 몸이 따라갔다. 손이 뭔가를 잡았다. 놓쳤다. 어깨가 부딪혔다. 등. 발목이 어딘가에 걸리고 몸은 계속 아래로. 소리가 났다. 자기 소리인지 돌 소리인지.

멈췄다.

누워 있었다. 어디에. 차가웠다. 등 밑에 물이 있었다. 얕은 물. 젖은 돌.

발목.

움직였다. 불이 났다. 소리를 냈다. 이를 물었다.

위를 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경사가 어디서 시작되는지도 안 보였다. 별도 없었다. 나뭇가지가 하늘을 다 덮고 있었다.

"빨간불."

목소리가 갈라졌다. 너무 작았다.

"빨간불!"

물소리가 먹었다. 아무 소리도 안 돌아왔다.

손뼉. 한 번. 두 번. 세 번.

젖은 손바닥. 소리가 죽었다.

기다렸다.

없다.

'그는 능선에 있어. 반대편. 30분 게임. 아직 15분도 안 됐어. 그는 내가 여기 있는 걸 몰라. 여기가 어딘지도 몰라. 나도 몰라.'

숨이 빨라졌다. 아까와 다른 빠름이었다. 아까는 다리 사이가 뜨거웠다. 지금은 손끝이 얼었다. 같은 심장인데.

'금지 구역이야. 내가 들어왔어. 종이에 엑스 세 개.'

다시 소리쳤다. 이름을. "준호!"

물소리.

손이 떨려서 주머니를 두 번 놓쳤다. 핸드폰. 화면이 켜졌다. 빛이 너무 밝았다. 얼굴이 아팠다. 눈물이 나고 있었다는 걸 그때 알았다.

통화 버튼. 신호.

한 번.

두 번.

"어디야."

그의 목소리. 숨이 찼다. 이미 뛰고 있었다.

"계곡. 미끄러졌어. 빨간불. 빨간불이야."

"들었어." 발소리가 전화 너머로 들렸다. 낙엽. 빠르게. "들었어. 계속 말해. 끊지 마."

"발목이."

"움직여?"

"응. 아파."

"움직이면 안 부러진 거야. 물소리 나?"

"응. 밑에. 물에 누워 있어."

"화면 켜서 위로 들어. 계속."

세라가 팔을 들었다. 빛이 나뭇가지를 쳤다. 팔이 떨렸다.

"보여?"

"아직. 계속 말해."

"뭐라고."

"아무거나."

"무서워."

"알아."

"진짜 무서워."

"알아. 가고 있어."

준호는 능선에 있었다. 아까와 같은 자리. 빛을 넓게 쏘고 있었다. 그때 소리가 났다. 저 아래. 돌이 굴러가는 소리. 짧고. 끊기고. 사슴이라고 생각했다. 생각하려고 했다. 손전등을 그쪽으로 돌렸을 때 빛은 경사 위만 만지고 아래로는 못 내려갔다.

3초. 4초.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울렸을 때 그는 이미 뛰고 있었다.

빛이 왔다. 경사 위에서. 미친 듯이 흔들리며. 세라는 소리쳤다. 빛이 멈췄다. 그녀를 찾았다. 얼굴에 바로. 그녀가 눈을 감았다. 빛이 즉시 내려갔다. 그녀의 다리로.

"들었어." 그가 말했다. 위에서. 손전등을 위로 들었다. 규칙. 그리고 미끄러져 내려왔다. 반은 뛰고 반은 굴렀다.

그가 물에 무릎을 꿇었다. 손이 얼굴에. 어깨에. 팔. "어디."

"발목. 오른쪽."

그가 운동화 끈을 풀었다. 천천히. 발목을 손전등으로 봤다. 부어 있었다. 그가 발가락을 눌렀다. "움직여봐."

세라가 발가락을 움직였다.

"됐어." 그가 숨을 뱉었다. 길게. "됐어. 안 부러졌어."

"게임 끝났어?"

"끝났어. 네가 끝냈어."

그가 그녀를 안아 들었다. 물이 떨어졌다.

"규칙 5번." 세라가 말했다. 목소리가 이상했다.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끌고 가지 않는다."

"이건 끄는 거 아니야. 드는 거야."

"말장난."

"응."

경사를 올랐다. 그의 숨이 거칠었다. 두 번 멈췄다. 한 번은 미끄러졌다. 세라를 놓지 않았다. 손전등은 그녀가 들었다. 앞을 비췄다. 그가 발을 디디는 곳을.

펜션까지 20분이 걸렸다. 그는 한 번도 그녀를 내려놓지 않았다.

거실. 소파. 그가 냉동실에서 얼음을 꺼내 수건에 쌌다. 발목 밑에 쿠션. 위에 얼음.

세라는 그의 손을 봤다. 얼음을 대고 있는 손.

"너 떨어."

"응."

"이제 괜찮은데."

"알아."

그가 손을 떼지 않았다. 세라도 그 말을 안 했다.

침대. 새벽 한 시. 발목은 침대 끝에 베개를 쌓아 올려두었다. 준호는 옆에 누웠다. 손은 그녀 배 위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할 생각이 안 났다.

"빨간불 외쳤는데." 세라가 천장을 보고 말했다. "아무도 안 왔어. 그게 제일 무서웠어."

"왔어."

"늦게."

"왔어."

침묵.

"미안." 세라가 말했다. "금지 구역이었어. 옆인 줄 알았는데 옆이 아니었어."

"어두우면 옆이 어딘지 몰라. 내가 그걸 종이에 안 썼어."

"나도."

"내일 쓰자."

"내일 밤은 내 차례인데."

준호가 그녀를 봤다. 어둠 속에서. "다리가."

"사냥꾼은 안 뛰어도 돼."

"세라."

"자자."

그가 대답하지 않았다. 손을 그녀 배 위에 그대로 두었다. 숨이 오르고 내렸다. 세라의 것. 그리고 그의 것. 조금씩 같은 속도가 됐다.

테이블 위에 종이가 있었다. 두 개의 서명. 일곱 개의 규칙. 아무도 그것을 보고 있지 않았다.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