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기가 남는 자리
난로에 불이 있었다.
유라가 문을 열었을 때 공방은 지난주와 달랐다. 작업대가 벽 쪽으로 밀려 있었고 그 자리에 낮은 벤치 하나가 놓여 있었다. 벤치 위에는 회색 양모 담요가 개켜져 있었다. 난로에서 참나무 타는 냄새가 났다.
"오셨어요."
현정은 앞치마를 벗고 있었다. 오늘은 셔츠 소매를 걷지 않았다. 유라는 그것을 보고, 자신이 어떤 것들을 이미 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소매. 담요. 난로. 벤치의 높이.
"치마 입으셨네요."
"…네."
아침에 옷장 앞에서 십 분을 서 있었다. 바지를 꺼냈다가 넣었다. 검은 울 치마를 꺼냈다. 그것은 지난 십 년 동안 그녀가 자기 자신을 위해 내린 몇 안 되는 결정 중 하나였다.
"커피는 나중에요." 현정이 말했다. "먼저 앉아요."
현정이 벤치에 앉았다. 담요를 무릎 위에 펼쳤다. 유라는 그 앞에 서 있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았다. 이 년 동안 새벽마다 읽은 것들이 있었다. 그런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유라 씨."
"네."
"뭐 세고 있어요?"
"…담요가 왜 회색인지요."
현정은 웃지 않았다. "세탁이 편해서요. 이리 와요."
유라는 갔다. 현정의 무릎 위에 엎드리는 데는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어디에 손을 두어야 하는지, 발은 바닥에 닿는지, 얼굴은 어느 쪽으로 돌려야 하는지. 현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다렸다. 마침내 유라는 담요에 뺨을 대고 난로 쪽을 보았다.
현정의 손이 등에 놓였다. 한 손. 견갑골 사이에. 그냥 놓였다.
따뜻했다. 굳은살이 있는 손이었다. 손이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허리까지. 다시 위로. 그것을 몇 번 했다. 유라는 숨을 세고 있었다. 들숨 넷, 날숨 넷. 현정의 손은 그 숨을 따라 움직이다가, 어느 순간부터 숨보다 조금 느리게 움직였다. 유라의 숨이 손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치마 올릴게요."
말하고 나서 올렸다. 급하지 않았다. 울이 허리께로 밀려 올라갔다. 스타킹 위로 손바닥이 놓였다. 엉덩이 위에, 그냥 놓였다. 온기가 스타킹을 통과했다.
첫 번째는 때린 것이 아니었다. 두드린 것이었다. 손바닥 전체로, 가볍게. 소리도 거의 나지 않았다. 유라의 몸이 움찔했다. 아파서가 아니라 시작되어서.
두드림이 이어졌다. 왼쪽, 오른쪽. 한 번씩. 간격이 길었다. 한 번 두드리고, 손바닥이 그 자리에 잠깐 머물렀다. 그리고 떨어졌다. 다시.
유라는 세고 있었다. 열둘. 열셋. 왼쪽이 조금 더 세다. 아니, 같다. 열넷. 이건 아직 아무것도 아니다. 이 정도로는. 열다섯. 월요일 아홉 시 회의. 열여섯.
"세고 있죠."
손이 멈췄다. 유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세지 마요. 제가 셀게요. 유라 씨는 안 세도 돼요."
손바닥이 다시 엉덩이 위에 놓였다. 이번에는 오래 머물렀다. 온기가 퍼졌다.
"스타킹 내릴게요. 속옷은 두고요."
스타킹이 허벅지 중간까지 내려갔다. 찬 공기가 닿았다. 그리고 손바닥이 닿았다. 면 속옷 한 겹 너머로 온기가 훨씬 가까워졌다.
두드림이 다시 시작되었다. 조금 세졌다. 아주 조금. 유라는 세지 않으려고 했다. 세지 않으려는 것이 세는 것보다 어려웠다. 그래서 그냥 두었다. 숫자가 떠오르면 떠오르게 두고, 문장이 떠오르면 떠오르게 두었다. 현정의 손은 그것들과 상관없이 움직였다. 정확하게, 같은 자리에, 같은 간격으로.
어느 순간 유라는 손이 세진 것을 알았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랐다. 소리가 달라져 있었다. 두드림이 아니라 때림이었다. 살이 울리는 소리. 그런데 그 사이에 놓이는 손바닥의 시간이 같이 길어져 있었다. 때리고, 머물고. 머무는 손바닥은 뜨거워진 살 위에서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속옷 내려도 될까요."
"…네."
면이 내려갔다. 이제 아무것도 없었다. 유라는 눈을 감았다. 감고 나서야 자기가 그때까지 눈을 뜨고 난로를 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맨살에 닿는 손바닥은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소리도 달랐다. 열도 달랐다. 때린 자리가 얼얼하게 달아오르고, 그 위에 손이 놓이면 손이 더 뜨거운지 살이 더 뜨거운지 알 수 없었다. 현정은 자리를 옮겨 가며 때렸다. 위쪽, 아래쪽, 가장 두꺼운 곳. 한 곳이 충분히 달아오르면 다음 곳으로. 유라는 그것이 대패질 같다고 생각했다. 결을 따라, 한 면씩.
그리고 어느 순간.
문장이 없었다.
유라는 그것을 바로 알아채지 못했다. 알아채는 것 자체가 문장이었으니까. 그냥 열이 있었다. 왼쪽 엉덩이의 열. 오른쪽의 열. 그 위에 놓인 손바닥. 난로의 소리. 담요의 냄새. 그것뿐이었다. 얼마나 그랬는지 몰랐다. 삼 초가 아니었다. 그것보다 훨씬 길었다.
눈물이 났다. 소리는 없었다. 그냥 담요가 젖었다. 슬퍼서가 아니었다. 무엇 때문인지 유라는 알지 못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것이 처음이었다. 알려고 하지 않는 것.
손이 멈췄다. 손바닥이 뜨거운 살 위에 펼쳐진 채 그대로 있었다.
"여기 있어요."
현정이 말했다. 유라에게 하는 말인지 자기 손에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둘 다였을 것이다.
얼마 뒤 담요가 허리 위로 덮였다. 현정의 손은 담요 밑에서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뜨거운 살과 따뜻한 손바닥 사이에 담요는 없었다. 유라는 그 상태로 오래 누워 있었다. 현정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괜찮으냐고 묻지 않았다. 어땠냐고 묻지 않았다. 그냥 손을 거기 두었다.
일어났을 때 현정은 작은 통을 가져왔다.
"이건 제가 쓰는 거예요. 손 트는 데. 그런데 이런 데에도 괜찮아요."
현정이 발라 주었다. 차가운 크림이 뜨거운 살에 닿았다. 손바닥이 그것을 펴 발랐다. 때리던 손과 같은 손이었다. 유라는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당연하게 느껴졌다. 같은 손이어야 했다.
커피를 마셨다. 이번에는 난로 앞에서. 두 사람은 별로 말하지 않았다. 현정이 내년에 쓸 물푸레나무 얘기를 조금 했다. 유라는 들었다. 듣는 동안 머릿속에 문장이 하나씩 돌아왔다. 그런데 천천히 돌아왔다. 한꺼번에 몰려오지 않고, 한 줄씩.
"다음 주에 봐요." 현정이 문 앞에서 말했다.
자유로에서 유라는 운전석에 앉는 것이 조금 불편했다. 얼얼함은 행주대교를 지날 때쯤 거의 사라졌다. 통증은 그렇게 빨리 갔다.
그런데 밤 열한 시, 오피스텔 침대에 옆으로 누웠을 때, 유라는 아직 거기에 손바닥이 있는 것을 느꼈다. 살갗 밑에, 손 모양 그대로. 통증이 아니었다. 온기였다. 온기는 통증보다 오래 남았다.
그날 밤 그녀는 여섯 시간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