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 속 목줄

일요일엔 비가 왔다. 공방은 쉬는 날이었다. 태희는 2층에서 커피를 내렸고, 지우는 창가에 앉아 스케치북에 아무것도 안 그리고 있었다. 연필을 쥔 채로 빗줄기만 봤다.

"뭐 그려."

"안 그려."

"연필은 왜 들고 있어."

"들고 있으면 그리는 것 같아서."

태희가 커피를 옆에 놓아주고, 맞은편에 앉았다. 지우가 커피를 안 마셨다. 태희도 안 마셨다.

"금요일에 한 말."

"……뭐."

"내가 안 물어봤다는 거."

지우가 연필을 내려놓았다.

"그거 그냥 한 말이야."

"그냥 한 말 아니잖아."

지우가 한참 창밖을 봤다. 태희는 기다렸다. 기다리는 건 잘했다. 가죽은 급하게 하면 다 망가지니까.

"……스물다섯 때."

"응."

"처음 오너 만났어."

태희는 그 얘기를 대충은 알고 있었다. 지우가 자기 입으로 말한 적은 없었다. 그냥 안 되는 것들 목록을 정할 때, 지우가 "얼굴 때리는 거"랑 "말 안 하고 규칙 바꾸는 거"를 첫 줄에 적었을 때, 대충 짐작했다.

"온라인에서 만났고, 처음 만난 날 목줄을 줬어. 검은 거. 두꺼운 거. 자기가 미리 사 온 거." 지우가 손으로 자기 목을 만졌다. 아무것도 없는 데를. "'이제 넌 내 거야' 그러면서. 나는 그때 그게 멋있는 줄 알았어. 그런 거 처음이었으니까."

"……."

"근데 목줄이 안 맞았어. 걔 취향이었지 내 취향이 아니었으니까. 너무 두껍고, 너무 뻣뻣하고, 여름엔 땀이 차서 목이 헐고. 한 번 얘기했어. 이거 좀 불편하다고. 그랬더니—"

지우가 웃었다. 안 좋은 웃음이었다.

"'펫이 무슨 의견이 있어'."

태희는 손에 든 컵을 내려놓았다. 소리가 안 나게.

"그 뒤로 말 안 했어. 뭐가 좋은지, 뭐가 싫은지. 물어보질 않으니까. 걔가 정하면 하는 거고, 걔가 바꾸면 바뀌는 거고. 규칙도 말 안 하고 바꿨어. 어제까진 됐던 게 오늘은 벌 받을 일이 되고. 그러다 어느 날 연락이 끊겼어. 그냥. 이유도 없이."

"목줄은."

"서랍에 있었어. 1년." 지우가 태희를 봤다. "이사할 때 버렸어. 버리면서 생각했어. 이거 1년 동안 내 목에 걸려 있었는데, 한 번도 내 거였던 적이 없구나."

빗소리가 창을 두드렸다. 지우 연필이 스케치북 위에서 굴러떨어졌다.

"누나 목줄은 예뻐. 진짜야. 누나가 만든 거니까 당연히 나한테 맞겠지. 사이즈도, 무게도, 누나는 그런 거 다 알잖아. 근데—" 지우 목소리가 흔들렸다. "근데 그것도 누나가 정한 거잖아. 내가 뭐가 좋은지 물어보지도 않고. 나는 그냥 열어보고 '예쁘다' 하고 걸면 되는 거잖아. 그게 걔랑 뭐가 달라."

"다르지."

"뭐가."

"……."

태희는 대답을 못 했다. 다르다는 건 알았다. 태희는 지우를 사랑했고, 그놈은 안 그랬고, 태희는 지우가 불편하다고 하면 당장 뜯어고쳤을 거고 — 그런데 그건 결과적으로 그렇다는 거지, 만들 때 물어봤다는 건 아니었다. 태희는 안 물어봤다. 6년 동안 손님들이 "알아서 해주세요" 하면 알아서 해줬고, 그게 다 좋았고, 그래서 지우한테도 알아서 해줬다. 지우가 알아서 해달라고 한 적이 없는데.

"나는 이번엔 내가 고른 거였으면 좋겠어."

"……응."

"그래야 진짜로 누나 거가 되니까." 지우가 눈을 비볐다. "내가 고른 걸 누나가 만들어서 내 목에 걸면, 그건 누나가 뺏은 게 아니라 내가 준 거잖아. 그래야 나도 누나 거고, 목줄도 누나 거고."

태희가 일어났다.

"어디 가."

"잠깐만."

태희는 1층으로 내려갔다. 작업대 맨 아래 서랍을 열었다. 상자를 꺼냈다. 다시 올라가서, 지우 앞에 놓았다. 지우 얼굴이 굳었다.

"이거 다시 하자는 거 아니야."

"……."

"뒤집어 봐."

지우가 뚜껑을 열었다. 검은 목줄. 은색 버클. 지우가 처음으로 그걸 만졌다. 들어서, 뒤집었다. 안쪽 면. 목에 닿는 자리.

작은 글자 하나가 찍혀 있었다.

T.

"……이게 뭐야."

"내 거."

"알아. 태희 T잖아. 왜 이게 여기—"

"네 목에 닿는 자리에 내 이름만 찍었어." 태희가 말했다. "네 건 없어. 네가 뭘 원하는지 안 물어봤으니까, 네 걸 찍을 생각도 못 했어. 나 혼자 만든 거니까 나 혼자만 있는 거지."

지우가 T를 엄지로 문질렀다.

"……그래서 싫었나 봐."

"응."

"열어봤을 때. 이유는 몰랐는데."

"응."

지우가 목줄을 내려놓았다. 상자 뚜껑을 닫지 않고, 그냥 옆에 뒀다.

"그럼 둘 다 새기자." 태희가 말했다. "새로 만드는 거에. 네가 고른 가죽에, 네가 고른 버클 옆에, 네가 그린 도안대로. 안쪽에 T랑 J. 나란히."

"……열쇠는."

"두 개."

지우가 고개를 들었다.

"생각해본다며."

"했어."

지우가 웃었다. 이번엔 좋은 웃음이었다. 울 것 같은 얼굴로 웃는 거.

"……누나 진짜."

"뭐."

"아니. 그냥."

지우가 일어나서 태희 무릎 위로 올라왔다. 마주 보고. 태희 얼굴을 두 손으로 잡고 키스했다. 브랫 짓 하나도 안 섞인, 그냥 키스. 태희는 지우 허리를 안았다. 빗소리가 계속 났다.

그날은 지우가 위였다. 태희가 그렇게 시킨 게 아니라, 지우가 그렇게 하고 싶어 했고, 태희가 그러라고 했다. 태희를 침대에 눕히고, 옷을 하나씩 벗기고, 목에서 가슴으로 배로 입을 맞추면서 내려갔다. 태희 젖꼭지를 입에 물고 오래 빨았다. 태희가 지우 머리를 잡지 않았다. 지우가 알아서 했다. 태희 보지를 핥고, 손가락 두 개를 넣어 안쪽을 구부리고, 태희가 허리를 들 때까지. 그리고 올라와서 태희 얼굴을 보면서 들어왔다.

"천천히."

"응."

지우는 천천히 했다. 태희가 시켜서가 아니었다. 태희 눈을 보면서, 태희가 눈을 감으면 이마에 입을 맞추면서, 태희 손을 찾아 깍지를 끼면서. 깊게 들어왔다가 거의 끝까지 빠졌다가 다시 깊게. 태희는 지우가 자기를 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금요일 밤에 골목에서 무릎을 털어주던 손이 지금은 태희 뺨을 감싸고 있었다.

"지우야."

"응."

"이름 불러줘."

"태희."

"……응."

"태희, 태희 누나."

태희가 먼저 갔다. 지우 목을 끌어안고, 지우 등에 손톱을 세우면서, 소리를 안 참고. 지우가 그 안에서 따라갔다. 태희 이름을 부르면서. 태희 위로 무너지면서.

한참 뒤에 태희가 지우 손목을 잡고 문질렀다. 습관이었다. 묶었다 풀고 나면 늘 하는 거. 오늘은 아무것도 안 묶었는데 손이 그냥 갔다.

"……안 묶었잖아."

"알아."

"근데 왜 문질러."

"그냥."

지우가 태희 손에 자기 손목을 맡겨놓고 있었다. 눈을 감고. 그러다 아주 작게, 거의 안 들리게 말했다.

"……주인님."

태희 손이 멈췄다.

"아, 아니야. 취소. 아직 아니야." 지우가 눈을 번쩍 떴다. 귀까지 빨개졌다. "목줄 걸고 나서라고 했잖아. 방금 건 없던 거야."

"들었는데."

"못 들은 거야."

"들었어."

"누나."

태희는 웃으면서 지우 손목을 마저 문질렀다. 못 들은 걸로 해줬다. 당분간은.

검은 목줄은 그날 밤 서랍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지우가 작업대 위에, 카멜 견본 옆에 올려놨다. 뒤집어서. T가 위로 보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