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이 침대 밑으로 들어갔다
"다음 주에 엄마 오신대."
"오이."
민아가 젓가락을 멈췄다.
"뭐?"
"오이." 정훈이 김치찌개를 떠먹었다. "그 얘기 정지. 빨강."
"야. 그거 안전어야. 아무데나 쓰지 마."
"네가 먼저 아무데나 썼잖아. 식탁에서."
"그건 체크인이었고."
"이것도 체크인이야. 엄마 얘기 나오면 내가 멈춰야 되니까."
민아는 젓가락을 내려놨다. 정훈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그게 문제였다. 오이가 이제 침실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 식탁에서, 마트에서, 시어머니 얘기할 때 나오는 말이 됐다. 지난주에 정훈이 홈쇼핑 채널 앞에서도 오이라고 했다. 민아가 안마의자를 3분 넘게 보고 있었을 때.
"그럼 안전어를 바꾸자."
"뭘로."
"매번 새로. 그날그날. 씬 시작할 때 정하는 거야. 오늘의 안전어는 뭐, 하고."
정훈이 숟가락을 든 채 생각했다.
"그거 괜찮네. 매번 정하면 잊어버릴 일도 없고."
"잊어버려서 그러는 게 아니라 오이가 닳아서 그래."
"오이가 닳아?"
"네가 닳게 했어."
토요일. 새 시스템이 두 개 더 생겼다.
첫째, 500원 동전. 숫자 면이 나오면 민아가 위, 학이 나오면 정훈이 위. 정훈이 제안했다. 둘 다 원하면 누가 정하냐는 문제를 회의 없이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IT 회사 팀장다운 발상이었다.
둘째, '바꿔'. 씬 중간에 역할을 바꾸는 말. 안전어가 아니라 스위치어. 민아가 제안했다. 레이가 워크숍에서 그런 커플이 있다고 했다. 정훈은 처음엔 "중간에 바꾸면 흐름 끊기잖아" 했다가 30초 뒤에 "근데 그게 좋을 수도 있겠네" 했다.
그리고 오늘의 안전어.
"참치."
"고양이 이름을?"
"부르면 오잖아. 진짜로 멈추게 돼."
"참치가 침대 위로 올라오면 진짜 다 끝나는 거긴 하지."
"그러니까."
정훈이 동전을 던졌다.
동전이 손등에 떨어지지 않았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서 이불 위로 튕기고, 침대 모서리에서 한 번 더 튕기고, 마룻바닥에 떨어져서 굴렀다. 둘 다 그걸 봤다. 동전은 정확히 침대 밑으로 들어갔다.
"...야."
"내 잘못 아니야. 동전이."
둘 다 엎드렸다. 침대 밑은 어두웠다. 정훈이 폰 플래시를 켰다. 먼지. 참치 장난감. 언젠가 잃어버린 양말 한 짝. 그리고 동전 근처에 참치가 먼저 와 있었다. 앞발로 동전을 툭툭 치고 있었다.
"참치. 그거 놔."
참치가 동전을 더 밀었다. 침대 밑 저 안쪽으로.
"안전어 쓰지 마." 민아가 말했다. "아직 시작도 안 했어."
"이름 부른 거야."
"그러니까 헷갈린다고 했잖아."
정훈이 팔을 끝까지 뻗어서 동전을 꺼냈다. 먼지가 묻은 500원. 학이었다.
"내가 위."
"...동전이 정한 거니까."
정훈이 민아를 봤다. 팬티 하나 입고 침대 밑에서 나온 남자가 동전을 들고 마누라를 보는 눈. 근데 그 눈이 지난주랑 달랐다. 뭔가 결정된 눈. 12년 동안 민아가 밑에서 보던 눈이 돌아왔는데, 그게 예전이랑 똑같지 않았다. 예전엔 당연해서 그런 눈이었고 지금은 골라서 그런 눈이었다.
"침대."
민아가 올라갔다. 정훈이 따라 올라와서 민아를 눕혔다. 늘 하던 대로. 손이 허벅지 안쪽을 쓸어올렸다. 입술이 목에서 쇄골로.
"더 세게."
정훈이 멈췄다.
"뭐?"
"목. 더 세게 물어."
정훈이 민아를 봤다. 그리고 물었다. 세게. 민아가 소리를 냈다. 목에 자국이 남을 만큼. 월요일에 스카프 해야 할 만큼.
정훈 손이 가슴으로 갔다. 젖꼭지를 엄지로.
"거기 말고 위."
"위?"
"위쪽. 아니, 거기. 손톱으로."
정훈이 손톱으로 했다. 민아 등이 침대에서 들렸다. 12년 동안 정훈이 엄지로만 했던 자리를 손톱으로 하니까 완전히 다른 데였다.
"너 원래 이렇게 말 많았어?"
"이제부터."
정훈이 웃었다. 근데 손은 안 멈췄다.
정훈 손이 다리 사이로 갔다. 민아는 젖어 있었다. 정훈 손가락 하나가 들어왔다.
"두 개."
두 개. 정훈이 손가락을 구부렸다. 안쪽 위. 민아가 정훈 손목을 잡았다.
"거기. 거기 그대로."
정훈이 그대로 했다. 손가락 두 개가 안쪽 위를 누르고 엄지가 클리토리스를 문질렀다. 민아가 시켰다. 민아가 시킨 대로 정훈이 했다. 근데 정훈이 위였다. 그게 이상하지 않았다. 12년 동안 이렇게 안 한 게 이상했다.
"뒤로."
정훈이 민아를 뒤집었다. 민아가 엎드리고 엉덩이를 들었다. 정훈이 뒤에서 들어왔다. 한 번에. 민아가 시트를 잡았다.
"머리."
"뭐?"
"머리채. 잡아."
정훈이 잠깐 멈췄다. 12년 동안 한 번도 안 했던 거. 정훈이 민아 머리카락을 쥐었다. 살짝.
"더."
정훈이 세게 쥐었다. 민아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정훈이 뒤에서 박으면서 머리채를 당겼다. 민아가 소리를 질렀다. 좋아서. 정훈이 그 소리를 듣고 더 세게 박았다. 침대가 벽에 부딪혔다. 옆집. 상관없었다.
정훈 손이 앞으로 돌아와서 클리토리스를 찾았다. 뒤에서 박으면서 앞에서 문질렀다. 민아 다리가 떨렸다. 거의. 거의—
"바꿔."
정훈이 멈췄다.
민아가 몸을 돌렸다. 정훈 자지가 빠져나갔다. 민아가 정훈 가슴을 밀었다. 정훈이 뒤로 넘어갔다. 민아가 그 위에 올라탔다. 정훈 손목 두 개를 잡아서 머리 위로 눌렀다.
"움직이지 마."
정훈 눈이 바뀌었다. 그 눈. 안대 벗겼을 때 그 눈. 밑에서 올려다보는 눈. 근데 이번엔 무섭지 않은 눈.
민아가 정훈 자지를 잡고 자기 안에 넣었다. 정훈이 소리를 냈다. 민아가 움직였다. 아까 정훈이 뒤에서 하던 속도로. 정훈 손목을 누른 채로. 정훈이 손목을 살짝 움직였다. 민아가 더 눌렀다.
"움직이지 말랬어."
"...네."
"네도 하지 마."
"...민아님."
민아가 웃었다. 근데 안 멈췄다. 정훈 젖꼭지를 물었다. 정훈이 낑낑댔다. 익숙한 소리. 민아가 자기 클리토리스를 문질렀다. 정훈 위에서. 정훈이 그걸 봤다. 눈을 못 뗐다.
"싸지 마."
"안 싸—"
"참아."
"참고 있어—"
민아가 왔다. 정훈 위에서. 손목을 누르고 몸을 접으면서. 정훈 자지를 조이면서. 정훈이 이를 악물고 참았다. 얼굴이 벌겠다. 민아가 숨을 돌리고 정훈을 봤다.
"바꿔." 정훈이 말했다.
민아가 웃었다. 진짜로 웃었다. 근데 벌칙 없이. 정훈 손목을 놨다. 정훈이 일어나면서 민아를 눕혔다. 다리를 잡아서 자기 어깨에 걸쳤다. 민아가 접혔다. 정훈이 들어왔다. 깊었다. 민아가 소리를 냈다.
"이렇게?"
"응—"
"더?"
"더."
정훈이 더 했다. 민아 다리를 어깨에 걸치고 위에서 내리꽂았다. 민아 손이 정훈 등을 긁었다. 정훈이 민아 얼굴을 봤다. 민아도 정훈 얼굴을 봤다. 이마에 힘줄. 턱에 힘. 눈꼬리가 풀렸다. 민아가 소리를 낼 때. 돌아왔다. 아니, 돌아온 게 아니라 새로 왔다.
"바꿔."
둘이 동시에 말했다.
멈췄다. 서로 봤다.
"...뭐야."
"네가 먼저 했어."
"동시였어."
"그럼 아무도 안 위인 거야?"
"그냥 해."
정훈이 민아 다리를 내렸다. 옆으로 누웠다. 민아도 옆으로. 마주 보고. 정훈이 민아 다리 하나를 자기 허리에 올렸다. 옆으로 들어왔다. 얕았다. 근데 얼굴이 바로 앞이었다. 정훈 손이 민아 허리에. 민아 손이 정훈 얼굴에. 아무도 위가 아니었다. 아무도 밑도 아니었다.
"이거 뭐야." 민아가 말했다.
"몰라. 12년 동안 안 해봤네."
"이게 제일 좋은데."
"...나도."
정훈이 움직였다. 민아도 움직였다. 서로. 정훈 자지가 얕게 들어왔다 나갔다. 민아 클리토리스가 정훈 뿌리에 닿았다. 민아가 정훈 입술을 물었다. 정훈이 민아 등을 안았다. 둘 다 눈을 뜨고 있었다.
"싸도 돼." 민아가 말했다.
"너는."
"같이."
같이 왔다. 정확히 같이는 아니었다. 정훈이 먼저 와서 민아 안에서 뜨거워졌고, 그 뜨거움에 민아가 3초 뒤에 왔다. 근데 그 정도면 같이였다. 정훈이 민아 이름을 불렀다. 민아가 정훈 이름을 불렀다. 마주 보고. 옆으로 누워서. 12년 만에 제일.
한참 뒤에 참치가 침대 위로 올라왔다.
정훈 다리 사이로 지나가서 민아 베개 옆에 앉았다.
"참치." 정훈이 말했다.
"안전어 썼어?"
"아니. 고양이 불렀어."
"봐. 헷갈리잖아."
"이미 끝났으니까 상관없지."
민아가 참치 등을 쓸었다. 참치가 골골거렸다. 동전은 침대 밑 어딘가에 아직 있었다. 정훈이 내일 청소기 돌릴 때 찾겠다고 했다. 벌칙이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했다. 그냥 500원이 아까워서.
"다음 안전어는 네가 골라." 정훈이 말했다.
"이미 골랐어."
"뭔데."
"다음 주에."
정훈이 민아를 봤다. 민아가 웃었다. 참치가 둘 사이에서 하품을 했다.
일요일 아침. 정훈이 청소기를 돌리다가 침대 밑에서 500원을 찾았다. 먼지를 털고 냉장고 포스트잇 옆에 자석으로 붙였다. 그 옆에 볼펜으로 썼다.
'토요일용. 절대 쓰지 말 것.'
민아는 그 밑에 썼다.
'참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