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가죽, 은색 버클
"싫어."
상자 뚜껑이 열린 지 정확히 삼 초 만이었다.
태희는 손에 든 가죽 가위를 내려놓지도 못했다. 3주였다. 지우가 원룸에 들어가 마감 작업을 하는 밤마다 셔터를 내리고, 스탠드 하나만 켜놓고 만든 물건이었다. 폭 2.5센티의 검은 소가죽. 은색 롤러 버클. 앞쪽에 작은 D링 하나. 군더더기 하나 없이. 태희가 아는 한 가장 예쁘고, 가장 튼튼하고, 가장 저 목에 잘 맞을 물건.
"뭐가 싫어."
"이거." 지우는 상자 안에 든 걸 만지지도 않고 검지로 뚜껑만 톡톡 두드렸다. "안 할 거야."
"안 예뻐?"
"예쁘지. 누나가 만든 건데."
"그럼 뭐."
지우가 작업대 위로 폴짝 올라앉았다. 태희가 오후 내내 다듬어 놓은 커팅 매트 위에, 청바지 엉덩이를 얹고. 매트가 밀리면서 그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던 목타가 하나 굴러 떨어졌다. 태희는 그걸 보고도 아무 말 안 했다. 아직은.
"내 목에 걸 건 내가 고른다."
"……."
"내 목이잖아."
"네 목이 언제부터 네 거였어."
"목줄 채우기 전까진 내 거지." 지우가 씩 웃었다. 저 웃음이었다. 2년 전 가을에 처음 봤던, 사람 속을 뒤집어 놓고 자기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 "그러니까 안 채우려고. 아직은."
태희는 가위를 내려놓았다. 천천히. 이건 가위 들고 할 얘기가 아니었다.
지우가 공방 문을 처음 밀고 들어온 건 재작년 가을이었다. 손목 밴드를 맞추고 싶다고 했다. 폭은 4센티, 안쪽에 D링, 버클은 남이 채워주기 편한 방향으로.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고 했고, 스물여섯이라고 했다. 태희는 서른둘이었고, 손목 밴드를 그런 사양으로 주문하는 사람이 뭘 원하는 건지 정확히 아는 나이였다.
세 번을 왔다. 사이즈 조정한다고, 색을 바꾸고 싶다고. 세 번째 날 지우가 완성된 밴드를 손목 위에 얹어놓은 채 말했다.
"이거 채워주실 수 있어요? 제 손으로 하긴 싫어서."
태희는 채워줬다. 그리고 물었다. 뭘 원하는지, 어디까지인지, 절대 안 되는 건 뭔지, 멈추자는 말은 뭘로 할 건지. 지우는 "가위"라고 했다. 가죽 공방이니까요. 태희가 웃었고, 그게 시작이었다.
2년이 지났다. 지우는 스물여덟이 됐고 태희는 서른넷이 됐다. 지우는 일주일에 나흘은 공방 2층 살림집에서 자고, 태희 냉장고에 자기 맥주를 채워 놓고, 태희 무릎 위에서 잠들고, 태희가 시키는 건 뭐든 했다. 아니, 정확히는 — 태희가 시키는 걸 일단 안 하고 버티다가, 결국은 다 했다. 처음부터 그랬다. 태희는 그게 좋았다. 순한 개는 재미가 없었다.
그런데 목줄은, 안 한다고 했다.
"그럼 고르든가."
"응?"
"골라. 색도, 버클도. 대신—" 태희가 작업대로 걸어갔다. 커팅 매트 위에 앉은 지우의 무릎 사이에 서서, 턱을 잡아 올렸다. "그때까지 넌 목줄 없는 강아지야."
"그게 뭐 어때서."
"목줄 없는 강아지는 주인 말 안 듣잖아." 태희가 엄지로 지우 아랫입술을 눌렀다. "그럼 주인도 강아지 말 안 들어야 공평하지."
"……무슨 뜻이야."
"내려와."
지우는 안 내려왔다. 대신 태희의 엄지를 입에 물었다. 살짝. 이빨 자국 날 정도로만.
"내려오라고 했는데."
"목줄이 없어서 잘 안 들려."
태희가 손을 뺐다. 그리고 지우의 벨트를 잡아 그대로 끌어내렸다. 지우가 "악" 하고 작업대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쌓인 가죽 자투리 더미 위에 무릎을 찧었다.
"무릎 아파."
"가죽이야. 푹신하지."
"하나도 안 푹신해."
"그럼 좀 참아."
태희가 작업 의자에 앉았다. 무릎을 벌려 지우가 그 사이에 오게 했다. 지우는 투덜대면서도 자기 발로 무릎걸음을 해서 태희 허벅지 사이에 들어와 앉았다. 늘 이런 식이었다. 입으로는 싫다고 하면서 몸은 이미 와 있는.
"고르라며." 태희가 지우의 청바지 단추를 풀었다. "지금 골라."
"뭘."
"색." 지퍼를 내리고, 손을 넣어 꺼냈다. 이미 반쯤 서 있었다. 태희 손바닥에 닿자마자 꿈틀, 하고 마저 부풀어 올랐다. 지우 얼굴이 빨개졌다. 화나서 그런 게 반, 나머지 반은 다른 이유였다. "검정? 갈색?"
"이렇게 물어보는 게 어딨어."
"여기 있네." 태희가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아래에서 위로, 귀두 밑 예민한 자리를 엄지로 문질러 올리면서. 지우가 이를 악물고 숨을 삼켰다. "색깔."
"……몰라."
"모르면 고르질 말든가."
"고를 거야. 근데 지금은 아니—"
태희가 손을 뗐다.
지우가 허리를 앞으로 밀었다. 태희가 무릎으로 지우 어깨를 밀어 제자리에 앉혔다. 잠깐 기다렸다가, 다시 잡았다. 이번엔 조금 더 빠르게. 손바닥에 침을 발라 미끈하게. 지우 자지가 손 안에서 뜨겁게 뛰었다. 태희는 그 박동이 빨라지는 걸, 지우 배가 딱딱하게 굳어가는 걸, 허벅지가 떨리기 시작하는 걸 전부 세고 있었다. 2년이면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 손이 먼저 알았다.
멈췄다.
"씨…… 진짜."
"버클은? 은색? 놋쇠?"
"누나."
"골라."
세 번째로 잡았을 땐 지우가 태희 허벅지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있었다. 손톱이 청바지를 뚫고 들어올 것 같았다. 태희가 귀두를 손바닥으로 감싸고 빙글 돌리자 지우 입에서 앓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투명한 액이 손가락 사이로 흘렀다. 태희가 그걸 지우 자지 전체에 발라가면서 물었다.
"색."
"안 골라."
"왜."
"이렇게는 안 골라." 지우가 눈을 뜨고 태희를 올려다봤다. 눈이 젖어 있었다. 그런데 안 흔들렸다. "이건 누나가 고르는 거잖아. 내가 그냥 대답만 하는 거고."
태희가 손을 멈췄다. 이번엔 놀리려고 멈춘 게 아니었다.
지우는 그 상태로도 버텼다. 태희 손 안에서 자지가 터질 듯이 뛰는데, 허리를 밀지도 않고, 애원하지도 않고, 그냥 태희를 올려다봤다. 입술을 깨물면서.
태희는 웃음이 나왔다.
"고집은 마음에 든다."
"……그럼 좀."
"싸."
손을 다시 움직였다. 이번엔 멈추지 않고, 빠르게, 지우가 좋아하는 대로 세게 쥐고서. 지우가 태희 어깨에 이마를 박았다. 세 번 참았던 게 한꺼번에 왔다. 지우 몸이 활처럼 휘었다가 태희 손 안에 뜨겁게 쏟아졌다. 손바닥이 흥건해질 때까지, 지우가 숨을 못 쉬고 헐떡일 때까지, 태희는 끝까지 짜냈다.
"쌀 때 내 이름 부르라고 했지."
"……태희."
"주인님, 은 아니고?"
"목줄 없잖아." 지우가 태희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웅얼거렸다. 숨이 아직 고르지 않았다. "그건 목줄 걸고 나서."
태희는 젖은 손을 지우 티셔츠 앞자락에 닦았다. 지우가 "아, 진짜" 하고 몸을 비틀었지만 도망가진 않았다.
"내일부터 골라. 진짜로. 대신 하나만."
"뭐."
"나 없는 데서 고르지 마."
"왜."
"내가 만들 거니까."
지우가 고개를 들었다. 한참 태희를 보다가, 씩 웃었다.
"……그건 인정."
그날 밤 검은 목줄이 든 상자는 작업대 맨 아래 서랍으로 들어갔다. 태희는 그걸 버리지 않았다. 버릴 수가 없었다. 목줄 안쪽, 목에 닿는 면에 — 지우가 들여다보지도 않아서 못 본 자리에 — 이미 글자 하나가 찍혀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