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감고 고르는 법

"전부 다."

"전부?"

"전부 다 보여줘. 가죽 있는 거 하나도 빼지 말고."

다음 날 저녁 일곱 시, 셔터를 반쯤 내리자마자 지우가 그 밑으로 기어 들어왔다. 겨드랑이에 스케치북, 손에는 편의점 봉지. 맥주 네 캔에 오징어 한 봉지. 밤새울 준비를 해온 얼굴이었다.

태희는 군말 없이 견본첩을 꺼냈다. 두꺼운 게 두 권. 소가죽, 염소가죽, 양가죽, 말 엉덩이 가죽, 식물성 태닝, 크롬 태닝, 오일 먹인 것, 밀랍 먹인 것. 서른두 장. 태희가 공방 열고 6년 동안 거래처 뚫어가며 모은 거였다.

지우가 한 장씩 넘겼다. 아주 진지한 얼굴로. 태희는 잠깐 감동할 뻔했다.

"이거."

지우가 손가락으로 짚은 건 형광 핑크였다. 이탈리아산 염소가죽. 태희가 재작년에 어떤 손님이 "인스타에 올릴 거예요" 하면서 지갑을 주문해서 한 장 들여온 뒤로 다시는 쓸 일이 없었던 색.

"……."

"싫어?"

"네 목에 그거 걸고 홍대 걸어 다닐 거야?"

"누나가 걸어 다니라고 하면." 지우가 눈을 깜빡였다. 이 자식은 눈 깜빡이는 것도 계산해서 했다. "어차피 누나 개잖아. 개는 주인이 골라준 거 하는 거 아니야?"

"어제는 네가 고른다며."

"그래서 골랐잖아. 핑크."

태희가 심호흡을 했다.

지우는 그다음에 형광 연두를 짚었고, 그다음엔 뱀무늬 프린트를 짚었고, 그다음엔 견본첩을 덮고 작업대 위에 또 올라앉았다. 이번엔 아예 다리를 꼬고, 태희 송곳을 집어서 손가락 사이로 뱅글뱅글 돌리면서.

"그거 내려놔."

"싫어."

"날 서 있어."

"알아." 지우가 송곳 끝으로 커팅 매트를 콕콕 찍었다. "누나가 뺏으면 내려놓을게."

태희는 뺏지 않았다. 대신 앞치마 끈을 풀었다.

지우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이건 예상 못 한 눈치였다. 태희가 앞치마를 벗어서 두 번 접었다. 두꺼운 캔버스 천, 6년 치 염료랑 밀랍이 배어서 뻣뻣해진 거. 그걸 들고 지우 앞에 섰다.

"뭐 하려고."

"고르라며."

"고르고 있잖아. 핑크—"

태희가 앞치마로 지우 눈을 가렸다. 뒤통수로 돌려서 끈을 묶었다. 지우가 "야" 하면서 손을 올리자 그 손에서 송곳을 빼앗아 저 멀리 던졌다. 쨍, 하고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눈으로 고르니까 자꾸 헛소리를 하지."

"헛소리 아닌데—"

"네 목에 닿을 건 색이 아니라 감촉이야." 태희가 지우의 허리를 잡아 작업대에서 내리고, 자기가 작업 의자에 앉은 다음, 지우를 무릎 위에 앉혔다. 등이 태희 가슴에 닿게. "그러니까 손으로 골라."

지우 손에 견본 한 장을 쥐여줬다. 얇고 매끈한 양가죽.

"어때."

"……미끄러워."

"다음."

크롬 태닝한 소가죽. 표면이 균일하고 차가운.

"차가워."

"다음."

말 엉덩이 가죽. 단단하고, 손톱으로 긁으면 광이 나는.

"딱딱해. 이건 지갑 같은데."

태희는 견본을 바꿔주면서 다른 손으로 지우 티셔츠 밑단을 걷어 올렸다. 지우가 움찔했다.

"뭐야."

"고르는 중이잖아. 집중해."

"집중이 되겠—읏."

태희 손바닥이 지우 배를 쓸어올려 가슴에 닿았다. 젖꼭지를 손톱으로 살짝 긁었다. 지우가 견본을 떨어뜨릴 뻔했다.

"놓치면 처음부터 다시야."

"치사해."

"다음 장."

지우는 견본을 꽉 쥐었다. 태희는 지우 젖꼭지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굴리면서 견본을 바꿔줬다. 하나. 둘. 셋. 넷. 지우의 대답이 점점 짧아졌다. "미끄러워." "……차가워." "……몰라." 태희 손이 청바지 안으로 들어갔을 때쯤엔 대답 대신 숨소리만 나왔다.

"말해."

"……아, 이건, 까칠해."

"다음."

태희가 지우 자지를 꺼내 쥐었다. 이미 딱딱했다. 눈을 가려서 그런지 어제보다 빨랐다. 손바닥으로 느슨하게 감싸고, 견본 넘기는 속도에 맞춰서 위아래로 움직였다. 지우가 태희 무릎 위에서 허리를 비틀었다. 귀두 끝이 벌써 미끈해져서 태희 엄지가 그 위를 미끄러졌다.

"누나, 이거, 이러면 진짜 못 골라—"

"고를 수 있어. 네 손이 알아."

열한 번째 장에서 지우 손이 멈췄다.

두껍고, 부드럽고, 표면이 살짝 울퉁불퉁한 가죽이었다. 식물성으로 태닝해서 아무 처리도 안 한, 태희가 제일 좋아하는 종류. 지우가 그 표면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한 번, 두 번. 손가락으로 가장자리를 만졌다.

"……이거."

"뭐가."

"이거 따뜻해."

태희가 손을 멈추고 견본을 확인했다. 카멜. 아무것도 안 입힌 누드 탠. 새것일 땐 연한 살구색인데, 쓰면 쓸수록 손때랑 체온으로 색이 짙어지는. 1년 차면 꿀색, 3년 차면 밤색이 되는.

"이거 쓰면 쓸수록 색이 변해."

"뭐로."

"네 목 온도로." 태희가 지우 귀에 대고 말했다. "네가 얼마나 오래 걸고 있었는지 색으로 보이는 거야."

지우가 견본을 꽉 쥐었다. 손등에 힘줄이 섰다.

"……이거 할래."

"핑크는."

"닥쳐."

태희가 웃으면서 지우를 안아 들었다. 눈 가린 채로 버둥거리는 걸 작업대 위에 눕혔다. 커팅 매트가 등에 깔리고, 손목을 머리 위로 모아 한 손으로 눌렀다.

"손 이거 계속 쥐고 있어."

"뭐?"

"놓치면 멈출 거야."

지우가 견본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태희는 지우 청바지를 무릎까지 끌어내리고, 자기 바지를 벗고, 작업대 위로 올라가 지우 허리 위에 앉았다. 눈을 가린 지우는 태희가 어디쯤 있는지 감으로만 알 수 있었다. 뜨거운 게 자지 끝에 닿았다. 젖어 있었다. 지우가 숨을 들이켰다.

"누나—"

"쥐고 있어."

태희가 천천히 앉았다. 지우 자지가 태희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 태희 보지가 뜨겁게 조여들었고, 지우가 견본을 쥔 손에 힘을 주다 못해 손끝이 하얘졌다. 태희는 끝까지 앉아서 잠깐 멈췄다. 지우 목에서 앓는 소리가 났다.

"그 가죽 놓치면 여기서 내려간다."

"안 놔. 안 놔, 절대—"

태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천천히, 허리를 앞뒤로 흔들어서 지우 자지가 안쪽 깊은 데를 문지르게. 그러다 점점 위아래로. 작업대가 삐걱거렸다. 커팅 매트가 밀렸다. 지우는 눈이 가려진 채로 견본을 두 손으로 가슴에 꼭 안고, 태희가 올라갔다 내려올 때마다 배를 딱딱하게 굳혔다. 눈이 안 보이니까 소리만 들렸다. 태희 숨소리, 작업대 삐걱거리는 소리, 둘이 부딪히는 젖은 소리.

"색깔 말해봐."

"카, 카멜—"

"버클은."

"몰라, 몰라, 나중에—"

"틀렸어." 태희가 세게 내려앉았다. 지우 허리가 튕겨 올라왔다. "다시."

"놋쇠, 놋쇠! 놋쇠로 할게—"

"왜."

"갈색이랑, 아, 어울리니까—"

태희는 그때쯤 자기도 말이 안 나왔다. 지우 자지가 안에서 부풀어 오르는 게 느껴졌다. 손을 내려 자기 클리를 문지르면서 더 빠르게 움직였다. 지우가 태희 이름을 불렀다. 태희, 태희, 누나, 태희. 주인님은 아직 아니었다. 그래도 됐다. 지금은.

지우가 먼저 갔다. 견본을 안은 채 등을 활처럼 휘면서 태희 안에 뜨겁게 쏟았다. 태희는 그 위에서 두어 번 더 움직여서 따라갔다. 허벅지가 떨렸다. 작업대 위에서, 지우 위에서, 무너지듯 엎드렸다.

한참 뒤에 태희가 앞치마를 풀어줬다. 지우가 눈을 깜빡였다. 스탠드 불빛에 눈이 부신지 얼굴을 찡그리고, 그러고 나서 가슴에 안고 있던 견본을 봤다.

"……핑크 아니네."

"카멜이야."

"난 왜 이걸 골랐지."

"따뜻하다며."

지우가 견본을 뒤집어 봤다. 손바닥으로 또 문질렀다. 아까랑 같은 표정으로.

"……응. 따뜻하네."

태희는 그날 밤 견본첩에서 카멜 페이지를 뜯어 작업대 벽에 압정으로 꽂았다. 지우가 자기 손때가 묻은 견본을 굳이 가져가겠다고 해서, 스케치북 사이에 끼워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