넵, 이라고 답하지 마

수요일 오전 10시 14분.

정훈은 주간 회의 중이었다. 배포 일정 얘기를 하고 있었고, 옆에 부장이 앉아 있었고, 테이블 위에 엎어놓은 폰이 진동했다. 정훈은 습관적으로 폰을 뒤집어서 봤다.

[민아] 퇴근하면 바로 샤워. 그리고 침대에 엎드려서 기다려.

폰을 다시 엎었다.

"김팀장, 얼굴이 왜 빨개."

"에어컨이 좀. 덥네요."

"에어컨 켜져 있는데."

"...그러네요."

회의가 끝나고 정훈은 화장실에 가서 답장을 했다. 손이 조금 떨렸다. 회사에서 이런 문자를 받는 건 처음이었다. 12년 동안 민아가 회사로 보낸 문자는 '저녁 뭐 먹을래' '참치 사료 떨어짐' '엄마가 김치 보내신대'가 전부였다.

[정훈] 넵

[민아] 넵이라고 하지 마. 회사 아니야.

[정훈] 네...

[민아] 네도 아니고.

정훈은 화장실 칸 안에서 폰을 들고 30초를 생각했다.

[정훈] 알겠습니다 민아님

답장이 없었다. 2분 뒤에 왔다.

[민아] 나 지금 사무실에서 웃음 터져서 하은이가 쳐다봄

[민아] 그래도 잘했어

정훈은 그 '잘했어'를 세 번 읽었다. 그리고 폰을 주머니에 넣고 자리로 돌아갔다. 앉는데 이상하게 엉덩이가 신경 쓰였다.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

오후 2시 8분.

[민아] 팬티는 벗고.

정훈은 부장 옆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커피를 쏟았다. 키보드에.

"김팀장 오늘 왜 그래."

"죄송합니다. 손이 미끄러져서."

"병원 가봐."

"네."

부장이 뭔가 더 말하려다 말았다. 정훈은 키보드를 뒤집어서 탁탁 털었다. 폰은 안 봤다. 볼 수가 없었다. 근데 계속 생각났다. 팬티는 벗고. 팬티는 벗고. 엎드려서. 이 여자가 지금 4층 편집부에서 교정지 보면서 이걸 보냈다는 게.

오후 4시 30분.

[민아] 오늘 뭐 할지 맞춰봐.

[정훈] ...때리기?

[민아] 정답. 어떻게 알았어

[정훈] 네가 어제 자로 손바닥 두드리는 거 봤어. 드라마 보면서.

[민아] 봤어?

[정훈] 봤어. 네가 안 보는 줄 알고 세 번 두드렸잖아. 세기 확인하듯이.

[민아] 그거 아니야. 그냥 자가 손에 있었어.

[정훈] 자가 왜 소파에 있었는데

민아는 답장을 안 했다. 정훈은 그게 답이라는 걸 알았다.

민아의 준비는 이랬다.

워크숍 노트에 스팽킹 페이지가 있었다. 레이가 그림까지 그려줬다. 엉덩이 아래쪽, 살 많은 부분. 꼬리뼈 피하기. 신장 쪽 피하기. 처음엔 손으로 워밍업. 세기는 천천히 올리기. 중간중간 확인. 끝나고 어루만지기. 마지막 항목 옆에 민아가 별표를 쳤다. '어루만지기 잊지 말 것.'

도구는 손. 그리고 30센티 자. 서랍에 있던 플라스틱 자. 정훈이 대학 때부터 쓰던 거라 모서리가 닳아 있었다. 민아는 그걸 손바닥에 세 번 두드려봤다. 아팠다. 근데 참을 만했다. 정훈은 어떨까.

퇴근을 일부러 30분 늦게 했다. 지하철에서 내려서 집까지 천천히 걸었다. 편의점에 들러서 필요 없는 물을 샀다. 이게 맞나 싶었다. 기다리게 하는 것. 근데 워크숍에서 그랬다. 기다리는 것도 씬의 일부라고.

현관문을 열었다. 조용했다. 참치가 나왔다. 정훈은 안 나왔다.

안방 문을 열었다.

정훈이 엎드려 있었다. 침대 위에. 팬티 없이. 엉덩이가 그대로. 머리는 팔에 묻고. 샤워를 언제 했는지 등에 물기가 다 말라 있었다.

"얼마나 있었어?"

"...40분?"

"내가 늦을 줄 몰랐어?"

"몰랐어."

"그럼 왜 계속 엎드려 있었어. 앉아서 기다려도 되잖아."

정훈이 팔에서 얼굴을 들었다. 볼에 팔 자국이 나 있었다.

"엎드려 있으라며."

민아는 문가에 서서 그 말을 들었다. 40분. 팬티 없이. 시킨 대로. 아무도 안 보는데.

가방을 내려놓았다. 외투를 벗었다. 블라우스 단추를 풀지 않았다. 오늘은 안 벗기로 했다. 정훈이 벗고 민아는 입고. 그게 오늘의 방식이었다.

침대 옆에 섰다. 정훈의 엉덩이. 12년 동안 본 엉덩이. 근데 이렇게 기다리는 엉덩이는 처음이었다.

"색깔?"

"초록."

손을 들었다.

첫 대. 찰싹. 소리가 났다. 근데 정훈이 고개를 돌렸다.

"모기 앉았어?"

"닥쳐."

"진짜 물어보는 거야. 지금 그게 때린 거야?"

민아는 손바닥을 봤다. 자기 손이 더 아팠다. 두 번째. 이번엔 좀 더. 찰싹. 정훈이 피식했다.

"이번엔 파리."

민아가 화가 났다. 진짜로. 그래서 세게 쳤다.

찰싹.

정훈의 소리가 바뀌었다.

"...어."

웃는 게 아니었다. 놀란 것도 아니었다. 그냥 '어'. 몸에서 나온 소리. 정훈의 등이 살짝 굽었다.

민아는 자기 손바닥을 봤다. 얼얼했다. 정훈의 엉덩이에 손자국이 붉게 남았다. 정훈이 엎드린 채 아무 말도 안 했다.

"색깔?"

"...초록."

목소리가 낮았다.

민아가 다시 쳤다. 같은 세기. 정훈이 숨을 내쉬었다. 또. 숨. 또. 이번엔 반대쪽. 정훈의 허리가 들렸다가 내려갔다. 리듬이 생겼다. 민아가 리듬을 찾았다. 치고, 기다리고, 정훈의 숨소리를 듣고, 치고. 다섯. 여섯. 정훈의 엉덩이가 전체적으로 붉어졌다. 일곱. 여덟. 정훈이 시트를 잡았다. 아홉. 열.

멈췄다. 손이 아팠다. 정훈의 숨이 거칠었다. 엉덩이가 뜨거웠다. 민아가 손바닥으로 그 위를 어루만졌다. 별표. 정훈이 소리를 냈다. 이번엔 분명한 신음.

민아가 정훈 다리 사이로 손을 넣었다. 자지가 침대 시트에 눌려 있었다. 완전히 서 있었다. 시트가 젖어 있었다. 정훈이 엉덩이를 맞으면서 계속 흘렸다는 얘기였다.

"뭐야 이거."

정훈이 대답 안 했다. 얼굴을 팔에 묻었다.

"말해."

"...몰라. 그냥 됐어."

민아는 자를 집었다.

"그거 내 자야."

"지금은 내 거."

자로 다섯 대. 소리가 달랐다. 손보다 날카로웠다. 첫 대에 정훈이 이를 악물었다. 둘째에 소리를 냈다. 셋째부터는 그냥 계속 소리를 냈다. 신음인지 뭔지 모를 소리. 다섯째에 정훈의 허리가 침대에서 완전히 들렸다.

"색깔."

"초록—초록, 근데—"

"근데 뭐."

"몰라. 그냥. 초록."

민아가 자를 내려놓고 정훈을 뒤집었다.

정훈의 얼굴을 봤다.

눈이 풀려 있었다. 초점이 어디 있는지 모를 눈. 입이 반쯤 벌어져 있고 볼이 벌겠다. 12년 동안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술 취했을 때도 이런 얼굴이 아니었다. 아플 때도 아니었다. 정훈이 뭔가 놓아버린 얼굴이었다. 민아는 잠깐 무서웠다.

"괜찮아?"

정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느리게.

"색깔. 진짜로."

"...초록."

민아가 정훈 얼굴 위로 올라갔다. 치마를 걷고 팬티를 옆으로 밀고 정훈 입 위에 앉았다.

"핥아."

정훈이 핥았다. 열심히. 민아가 시킨 것보다 열심히. 혀가 클리토리스를 찾아서 눌렀다. 12년 동안 정훈이 해준 것 중에 제일 열심히. 민아가 정훈 머리를 잡았다. 머리카락을 쥐고 자기 쪽으로 눌렀다. 정훈의 코가 민아 살에 파묻혔다. 숨을 못 쉴 텐데 정훈은 안 멈췄다.

민아가 왔다. 정훈 얼굴 위에서. 머리카락을 쥐고 허리를 흔들면서. 정훈 입이 온통 젖었다.

내려와서 정훈 위에 탔다. 정훈 자지를 잡고 자기 안에 넣었다. 한 번에. 정훈이 소리를 질렀다.

"싸지 마."

"민아—"

"안 돼. 참아."

"참고 있어, 참고—"

정훈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를 악물고 눈을 감았다. 민아가 움직였다. 정훈 가슴에 손을 짚고 위아래로. 정훈 젖꼭지가 손바닥 밑에 있었다. 민아가 손톱으로 긁었다. 정훈이 낑낑댔다. 엉덩이가 시트에 쓸릴 때마다 정훈이 움찔했다. 맞은 자리. 민아는 일부러 더 눌렀다.

"엉덩이 아파?"

"...아파."

"근데?"

"...근데 좋아."

민아는 그 말에 다시 왔다. 두 번째. 정훈 위에서 몸을 접으면서. 보지가 정훈 자지를 조였다. 정훈이 울부짖듯 소리를 냈다.

"지금."

정훈이 왔다.

그리고 그건 12년 동안 본 적 없는 거였다.

정훈의 몸 전체가 떨렸다. 허리만이 아니라 다리, 팔, 손끝까지. 소리가 컸다. 정훈은 평소에 소리를 별로 안 냈다. 근데 지금은 목에서 뭔가 찢어지는 소리를 냈다. 민아 안에서 오래 뿜었다. 끝난 줄 알았는데 또 떨렸다. 정훈이 민아 허리를 잡았다. 손이 떨렸다. 정훈 눈가가 젖어 있었다.

민아는 정훈 위에서 그걸 다 봤다.

한참 뒤에 내려왔다. 옆에 누웠다. 정훈은 천장을 보고 있었다. 숨이 아직 안 돌아왔다.

"괜찮아?"

"...응."

"너 방금 진짜..."

"알아."

"그렇게 하는 거 처음 봤어."

정훈이 대답 안 했다.

민아는 신났다. 솔직히 신났다. 손이 아직 얼얼했고, 정훈 엉덩이에 자기 손자국이 있고, 이 남자가 방금 자기 밑에서 온몸을 떨었다. 워크숍 12만 원이 이렇게 돌아올 줄 몰랐다.

"내가 이렇게 잘할 줄 몰랐지."

"...몰랐어."

"어루만지기도 했어. 별표 쳐놓은 거."

"응."

"다음엔 뭐 할까. 나 인터넷에서 본 게 있는데—"

"나 좀 이상한가."

민아가 멈췄다. 정훈은 천장을 보고 있었다.

"뭐가."

"...아니야."

"뭐가 이상해."

"그냥. 방금."

민아는 웃었다. "응, 이상해. 이상하게 반응 좋아. 자 다섯 대에 그렇게 되는 사람이 어딨어."

정훈이 웃었다. 조금 늦게. 민아는 불을 껐다. 정훈 등을 안았다. 손바닥이 정훈 엉덩이에 닿았다. 아직 뜨거웠다.

"잘했어." 민아가 정훈 등에 대고 말했다.

정훈은 대답 안 했다. 자는 줄 알았다.

정훈은 안 잤다.

어둠 속에서 천장을 오래 봤다. 엉덩이가 화끈거렸다. 시트에 닿을 때마다 아팠다. 근데 그것보다 뜨거운 게 가슴 어딘가에 있었다. 아까 민아가 자로 다섯 대 쳤을 때, 정훈은 그 순간 아무 생각도 안 났다. 배포 일정도 부장도 다음 달 인사이동도. 그냥 침대에 엎드려서 맞는 것밖에 없었다. 그게 너무 편했다. 12년 동안, 아니 41년 동안 그렇게 편한 적이 없었다.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몰랐다.

민아 손이 등 뒤에서 규칙적으로 오르내렸다. 민아는 잠들었다. 정훈은 새벽 세 시까지 안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