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듭은 풀렸는데 안 움직였어

수요일 오후 두 시, 출판사 4층 여자 화장실. 민아는 거울 앞에서 입 모양을 만들었다.

"꿇어."

너무 낮다. 다시.

"꿇어."

너무 높다. 다시.

"꿇—"

"네?"

뒤에서 신입 편집자 하은이 손을 씻다가 고개를 들었다. 거울 속에서 눈이 마주쳤다.

"아니, 아무것도. 원고에 나오는 대사."

"아, 무슨 원고요?"

"...역사 소설."

하은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갔다. 민아는 거울에 이마를 댔다. 이 회사에 8년을 다녔는데 화장실에서 꿇어를 연습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긴 싫었다.

그래도 목소리는 잡았다. 낮추는 게 아니었다. 그냥 짧게 하는 거였다. 놀란 것처럼도 아니고 화난 것처럼도 아니고, 그냥 당연한 것처럼. '앉아' 하고 참치한테 말할 때처럼. 참치는 안 앉지만.

퇴근길에 문구점에 들렀다. 새틴 리본, 폭 2.5센티, 와인색, 5미터. 계산할 때 알바생이 "선물 포장하세요?" 하고 물었고 민아는 "네" 하고 대답했다. 어떤 의미에선 맞았다. 다이소에서 수면 안대를 샀다. 검은색, 2천 원. 집에 와서 유튜브로 '풀리지 않는 매듭'을 세 번 봤다. 이번엔 검색 기록을 안 지웠다. 매듭이 뭐 어때서.

토요일. 규칙을 정했다.

"노트 없음. 다 외웠어."

"믿을게."

"웃으면 분리수거 한 달."

"...한 달?"

"넌 지난주에 세 번 웃었어. 이자야."

정훈이 뭐라고 하려다가 말았다. 민아가 리본 뭉치를 식탁 위에 올려놓는 걸 보고 있었다. 5미터가 생각보다 많았다. 와인색이 식탁 위에서 흘러내렸다.

"그거 다 쓸 거야?"

"닥쳐."

이번엔 미안하다고 안 했다.

식탁 의자 하나를 거실 한가운데로 끌어냈다. 등받이가 있는 나무 의자. 정훈이 샤워하고 나왔을 때 민아는 정훈의 흰 셔츠를 입고 있었다. 정훈 셔츠라 컸다. 단추는 두 개만 잠갔다. 밑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정훈이 그걸 보고 뭔가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배웠다.

"앉아."

정훈이 앉았다.

됐다. 한 단어. 민아는 자기가 방금 한 걸 믿을 수가 없었는데 정훈은 이미 앉아 있었다. 팬티 하나 입고, 나무 의자에, 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민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리본. 정훈의 손목을 등받이 뒤로 돌려서 감았다. 유튜브대로. 두 번 감고 사이로 넣고 당겨서 고리. 좀 느슨했다. 정훈이 손목을 살짝 움직였다. 민아가 봤다. 정훈이 멈췄다.

"움직이지 마."

정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대. 정훈의 눈 위로 씌웠다. 정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거 다이소—"

"말하지 마."

정훈이 입을 다물었다. 안대 밑으로 코와 입만 보였다. 웃으려던 입이 그냥 입이 됐다.

민아는 정훈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맨발이라 소리가 안 났다. 정훈은 소리로 민아를 찾으려고 고개를 조금씩 움직였다. 민아가 뒤에서 멈췄다. 정훈의 뒤통수. 젖은 머리. 목. 손을 뻗어서 정훈의 목덜미에 손가락 끝을 댔다.

정훈이 숨을 들이켰다.

12년 동안 이 남자 몸을 봤다. 샤워하고 나오는 것도 봤고 아플 때 등 두드려주기도 했고 살찌고 빠지는 것도 봤다. 근데 이렇게 '보는' 건 처음이었다. 목덜미에서 어깨로 내려가는 선. 쇄골 위에 작은 점. 가슴에 털이 별로 없는 거. 젖꼭지가 작고 어두운 색이라는 거. 알고는 있었는데 본 적은 없었다.

손톱으로 쇄골을 따라 그었다. 정훈이 고개를 뒤로 젖혔다. 민아가 앞으로 돌아와서 젖꼭지를 손톱 끝으로 튕겼다. 정훈이 소리를 냈다. 작게. 목 안에서 나는 소리.

"아파?"

정훈이 고개를 저었다.

"말해."

"...안 아파."

"그럼?"

정훈이 대답을 안 했다. 민아가 다시 튕겼다. 이번엔 좀 세게.

"좋아."

"뭐가."

"...네가. 만지는 거."

민아의 손이 아래로 내려갔다. 배. 배꼽 밑에 털. 팬티 고무줄. 팬티 위로 손바닥을 댔다.

이미 단단했다. 팬티 천이 앞으로 밀려서 모양이 다 보였다. 민아가 손바닥으로 그 위를 눌렀다. 정훈의 허리가 앞으로 밀렸다.

"벌써?"

"...안대 때문에."

"안대 때문에 뭐."

"안 보이니까. 어디 만질지 몰라서."

민아가 팬티를 내렸다. 정훈이 엉덩이를 들어서 도와줬다. 팬티가 발목에 걸렸다. 정훈의 자지가 배 쪽으로 튕겨 올라왔다. 12년 동안 본 자지. 근데 이 각도에서, 이 남자가 눈을 가리고 손을 묶인 채 앉아서, 민아가 뭘 하기를 기다리면서 서 있는 자지는 처음이었다. 귀두가 붉었고 끝에 벌써 액이 맺혀 있었다.

손으로 감쌌다. 천천히. 뿌리부터 끝까지 한 번. 정훈의 허리가 들썩였다.

"움직이지 마."

정훈이 멈췄다. 온몸에 힘이 들어간 게 보였다. 허벅지 근육이 팽팽했다. 민아가 다시 손을 움직였다. 천천히. 엄지로 귀두 밑을 문질렀다. 정훈의 입이 벌어졌다.

민아는 무릎을 꿇었다.

이건 노트에 없었다. 계획에 없었다. 12년 동안 입으로 해주는 건 늘 정훈이 부탁해서, 아니면 정훈이 민아 머리를 살짝 눌러서, 그렇게 시작됐다. '해줄래?' '응.' 그런 식. 오늘은 아무도 부탁 안 했다. 민아가 하고 싶어서 했다. 그게 얼마나 다른 건지 민아는 정훈의 자지를 입에 넣는 순간 알았다.

귀두를 혀로 돌렸다. 짜고 미끈했다. 정훈이 소리를 냈다. 민아가 들어본 적 없는 소리. 신음이 아니라 신음 직전에 목에서 걸린 소리. 민아는 더 깊게 넣었다. 입천장에 귀두가 닿았다. 정훈의 허벅지가 떨렸다. 손으로 뿌리를 잡고 입으로 위를 빨았다. 리듬. 정훈의 숨소리가 리듬에 맞춰 짧아졌다.

"민아—"

민아는 멈추지 않았다.

"싸겠어. 싸겠어, 잠깐—"

입을 뗐다.

정훈의 허리가 허공으로 밀렸다. 자지가 민아 입술 앞에서 꿈틀거렸다. 정훈이 낑낑거렸다. 진짜로 낑낑거렸다. 마흔한 살 팀장이.

"허락 안 했어."

"제발—"

"색깔?"

"초록. 초록 초록 초록—"

민아는 웃을 뻔했다. 참았다. 대신 정훈 자지 끝을 혀로 한 번 핥고 일어섰다. 정훈이 다시 낑낑댔다.

셔츠 단추 두 개를 풀었다. 셔츠를 벗어서 바닥에 떨어뜨렸다. 정훈은 못 봤다. 안대 밑에서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소리로 알아내려고.

"지금 뭐 하는지 말해줄까?"

정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빠르게.

"나 지금 너 앞에서 다 벗었어."

정훈의 자지가 꿈틀했다. 진짜로 눈에 보이게 꿈틀했다. 민아는 그걸 봤다. 말 한마디에.

"아무것도 안 입었어. 너 앞에 서 있어. 넌 못 보고."

"...보고 싶어."

"안 돼."

민아가 정훈 무릎 위로 올라갔다. 정훈 허벅지에 무릎을 대고 걸터앉았다. 의자가 삐걱했다. 민아의 보지가 정훈 자지 바로 위에 있었다. 닿지 않게. 민아는 이미 젖어 있었다. 정훈 입에 넣을 때부터 젖어 있었다. 허벅지 안쪽이 미끈했다.

자지를 손으로 잡고 자기 보지에 문질렀다. 넣지 않고. 귀두를 클리토리스에 대고 앞뒤로. 미끈한 소리가 났다. 정훈이 고개를 뒤로 젖혔다. 안대 밑으로 입이 벌어져 있었다.

"제발."

"제발 뭐."

"넣어줘."

"누구한테 부탁하는 거야?"

정훈이 멈췄다. 안대 밑에서 뭔가 생각하는 얼굴. 그리고—

"...민아님?"

민아가 입술을 깨물었다. 웃으면 안 된다. 웃으면 안 된다. 이건 웃긴 게 아니다. 아니 웃기다. 근데 웃기면서 동시에 배 밑이 뜨거웠다. 민아님. 이 남자가 방금 자기를 민아님이라고 불렀다.

"잘했어."

넣었다.

천천히. 민아가 속도를 정했다. 귀두가 들어오고, 멈추고, 조금 더, 멈추고. 정훈의 자지가 안에 차는 느낌. 12년 동안 이 남자가 안에 들어올 때 늘 정훈이 속도를 정했다. 오늘은 민아가 정했다. 그래서 다르게 느껴졌다. 각도가 달라서 다른 게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만큼만 들어오게 해서 달랐다.

끝까지 앉았다. 정훈이 소리를 냈다. 민아도 소리를 냈다.

"움직여도 돼?" 정훈이 물었다.

"아니."

민아가 움직였다. 정훈 어깨를 잡고 허리를 들었다 내렸다. 정훈은 묶인 손으로 아무것도 못 했다. 의자 등받이를 잡고 있는 게 다였다. 민아가 속도를 올렸다. 의자가 삐걱거렸다. 정훈의 젖꼭지가 민아 눈앞에 있었다. 민아가 그걸 물었다. 정훈이 소리를 질렀다. 짧게.

"싸지 마."

"...알았어."

"내가 말할 때까지."

"알았어. 알았어. 알았어."

민아는 자기 클리토리스를 손으로 문질렀다. 정훈 자지가 안에 있는 채로. 12년 동안 이렇게 해본 적이 없었다. 정훈이 늘 해줬으니까. 근데 자기가 하니까 정확했다. 어디를 얼마나 세게 눌러야 하는지 자기가 제일 잘 알았다. 정훈의 자지가 안에서 그걸 느끼는지 더 단단해졌다.

"민아, 민아, 진짜—"

"참아."

"참고 있어—"

민아가 왔다. 정훈 어깨를 손톱으로 파고 허리를 밀어 넣으면서 왔다. 소리를 냈다. 옆집이 들을 만큼. 보지가 정훈 자지를 조였다. 정훈이 낑낑댔다. 참느라고. 민아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한 번 더 조였다.

정훈 귀에 입을 댔다.

"싸도 돼."

정훈이 왔다. 의자가 넘어갈 뻔했다. 정훈의 허리가 의자에서 들리면서 민아를 위로 밀어 올렸다. 안에서 뜨겁게 퍼졌다. 정훈이 민아 이름을 불렀다. 그냥 민아. 님 없이. 민아는 그게 좋았다.

한참 있었다. 의자에서. 정훈 자지가 안에서 작아지고, 둘 다 숨이 돌아올 때까지. 참치가 어디선가 나타나서 바닥에 떨어진 셔츠 위에 자리를 잡았다.

민아가 안대를 벗겼다. 정훈이 눈을 깜빡였다. 거실 조명이 밝았다. 정훈이 민아를 봤다. 올려다봤다.

"...봤다."

"뭐."

"너. 위에서."

민아가 정훈 무릎에서 내려왔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정훈 뒤로 가서 리본을 풀려고 했다.

이미 풀려 있었다.

매듭이 풀려서 리본이 의자 등받이 뒤에 그냥 걸쳐져 있었다. 정훈 손목엔 아무것도 없었다. 정훈은 의자 등받이를 두 손으로 잡고 있었다. 손가락이 하얬다. 얼마나 세게 잡고 있었는지.

"언제 풀렸어?"

"...네가 올라왔을 때쯤?"

"그럼 그 뒤로 계속 안 묶여 있었어?"

"응."

"근데 왜 안 움직였어."

정훈이 손을 놨다. 손바닥에 등받이 나무 결이 찍혀 있었다. 손목엔 리본 자국이 하나도 없었다.

"네가 움직이지 말랬잖아."

민아는 리본을 들고 서 있었다. 와인색 5미터. 문구점에서 2천 원.

묶은 건 리본이 아니었다. 말이었다. 민아가 '움직이지 마' 한마디 한 걸 이 남자가 30분 동안 손바닥에 나무 자국이 나도록 지켰다. 아무도 안 보는데. 안대를 쓰고 있어서 민아가 보는지도 몰랐는데.

정훈이 손목을 돌리면서 일어섰다. 팬티가 아직 발목에 걸려 있었다. 그걸 발로 차서 벗고, 민아를 봤다.

"다음 주엔 내가?"

"아니."

"어?"

"한 번 더."

정훈이 잠깐 서 있었다. 그리고 웃었다. 근데 웃긴 웃음이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참치가 셔츠 위에서 하품을 했다. 안대는 참치가 물고 가서 소파 밑에서 나중에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