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밖에서
* 100% 창작 판타지입니다. 실존 인물과 무관합니다.
1.
계약이 끝난 다음 주 월요일, 나는 평소처럼 그의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결재 서류를 들고. 겉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척.
"김서인 씨." 재현이 서류를 받으며 말했다. 존댓말. 사무적인 어조. 나는 그 온도차에 매번 놀란다. 어젯밤엔 내 이름을 부르며 무너뜨렸던 사람이, 오늘은 나를 '씨'라고 부른다.
문이 닫히기 직전, 그가 낮게 덧붙였다. "오늘 저녁, 시간 있어?"
"...네."
"이번엔 스튜디오 말고. 밖에서 보자."
2.
우리가 도착한 곳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작은 레스토랑이었다. 재현은 와인을 따르며 평소와 다른 표정을 하고 있었다. 통제하는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그냥 한 남자의 얼굴.
"이상해요." 내가 말했다. "이렇게 마주 앉아있는 게, 스튜디오보다 더 긴장돼요."
"거기선 규칙이 있으니까." 그가 웃었다. "여긴 없잖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지."
"당신도요?"
"나도."
그 말이 이상하게 안심이 됐다. 완벽하게 통제된 사람인 줄 알았던 그도, 이 관계 앞에서는 나만큼이나 서투르다는 것.
식사가 끝나갈 무렵, 그의 손이 테이블 아래로 내 무릎에 닿았다. "오늘은 명령 안 해. 네가 원하는 거, 네가 말해봐."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럼... 집으로 가요. 당신 집."
3.
그의 집은 처음이었다. 지하 스튜디오처럼 도구도, 스탠드도 없는 곳. 그냥 평범한 침실.
"평범한 곳에서 하는 거, 처음이지?" 그가 넥타이를 풀며 물었다.
"네."
"그럼 오늘은 다르게 해보자." 그가 내 손목을 잡아 자기 목에 둘렀다. "오늘은 네가 먼저 시작해."
당황한 내가 머뭇거리자, 그가 내 손을 이끌어 자신의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게 했다. "천천히. 서두를 필요 없어."
낯선 주도권이 손끝에 쥐어졌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점점 대담해지며 그를 침대로 이끌었다. 스튜디오에서와는 정반대로. 이번엔 내가 그의 셔츠를 벗기고, 내가 그의 몸 위로 올라탔다.
"토끼가 사냥을 하네." 그가 낮게 웃으며 내 허리를 잡았다. 그러나 완전히 주도권을 넘기진 않았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그의 손이 내 움직임을 붙잡고, 속도를 조절했다. 통제자는 통제자였다, 방식만 바뀌었을 뿐.
밤이 깊도록, 우리는 계약서에도 규칙에도 없던 방식으로 서로를 알아갔다.
4.
다음 날 아침, 그의 침대에서 눈을 뜬 나는 부엌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재현이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셔츠 하나만 걸친 채로.
"출근 준비 해야지." 그가 머그컵을 건네며 말했다. "오늘부터는... 사무실에서 마주쳐도 아무 일 없는 척해야 하는 거, 알지?"
"알아요." 나는 커피를 받아 들며 웃었다. "근데 자신 없어요. 당신 얼굴 보면 어제 생각날 것 같은데."
"그럼 하나만 약속해." 그가 내 이마에 입을 맞췄다. "사무실에선 완벽하게 숨겨. 대신 문 닫히면, 그땐 다시 내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날 오후, 우리는 그 약속을 지키는 게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는 걸 알게 된다. 회사 탕비실에서, 예상치 못한 사람과 마주치면서.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