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부여
나는 플레이마다 내가 생각하는 적절한 의미들을 부여한다.
모든 플레이의 형태가 다 다르고, 그걸 실행하는 사람과 방법 또한 다르다 보니 그 의미도 다양하겠지만, 서로 비슷한 부분도 많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부여하는 몇 가지 예를 들면...
• 스팽킹이나 휩핑 같은 직관적 고통이 따르는 타격형 가학은, 성향적 위치 및 본분의 각성과 인지, 처벌로써는 속죄와 해방감, 흔적이 남기는 여운.
• 본디지는 신체적 통제를 통해 정신적 구속으로까지 전이되는 자유 박탈, 무력감, 편안함, 안정.
• 쉐이빙은 신생의 의식, 정화, 순수, 초심.
• 애널의 종류는 방어와 경계를 완전히 해제시킨 정복.
• 에네마나 골든은 인내, 동물적이고 원초적인 수치스러움 거기서 오는 낮아짐. 기타 등등.....
이렇게 플레이마다 굳이 구분하여 의미를 부여했지만, 사실 이런 의미들은 어떠한 플레이에 적용시켜도 조화롭고 통용되며 병행된다. 그 속성은 서로 서로 연결되어 있고, 결국 그것들이 추구하는 방향은 '관계의 확인과 완성'이라는 같은 목적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랑이 바탕이 된 의미 부여야 한다는 것. 그림을 한 장 그리더라도 인물, 풍경, 장면을 표현함에 있어 붓질 한 번, 한 번이 별생각 없는 시간으로 끝나버린다면, 그 그림은 기술만을 요구하는 모사에 지나지 않는다.
그 인물, 풍경, 장면에 나만의 이유, 상상과 멜로디, 이야기 등의 의미를 부여한다면 붓질 한 번, 한 번의 시간이 사랑이 되며 더 나아가 영혼을 담는 것 아닐까?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작품에서 영감과 감동을 얻는다.
플레이를 하는 이유가 쾌락만이 최우선 된 말초적인 관계, 단지 플레이를 위한 플레이 시간은 욕구가 원하고 몸이 느끼니까 한두 번이야 즐겁긴 하겠지만, 그 관능이 지배와 복종이라는 상시적 수직관계에서 지속반응하고 더욱 고조되는 나에겐 결국, 저렴한 쾌락은 마음속에 불편함과 공허만 남길뿐이다. 나만의 소신과 철학, 창의적 의미를 담아 플레이를 하는 이유는 나에게 플레이란 내가 그리고 있는 관계의 붓질이며, 관계의 보완과 유지라는 건설적인 이유가 더 크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다 보니, 때론 좋아하지 않아도 해야 하는 플레이를 필요로 할 때도 생긴다.
모든 플레이의 형태가 다 다르고, 그걸 실행하는 사람과 방법 또한 다르다 보니 그 의미도 다양하겠지만, 서로 비슷한 부분도 많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부여하는 몇 가지 예를 들면...
• 스팽킹이나 휩핑 같은 직관적 고통이 따르는 타격형 가학은, 성향적 위치 및 본분의 각성과 인지, 처벌로써는 속죄와 해방감, 흔적이 남기는 여운.
• 본디지는 신체적 통제를 통해 정신적 구속으로까지 전이되는 자유 박탈, 무력감, 편안함, 안정.
• 쉐이빙은 신생의 의식, 정화, 순수, 초심.
• 애널의 종류는 방어와 경계를 완전히 해제시킨 정복.
• 에네마나 골든은 인내, 동물적이고 원초적인 수치스러움 거기서 오는 낮아짐. 기타 등등.....
이렇게 플레이마다 굳이 구분하여 의미를 부여했지만, 사실 이런 의미들은 어떠한 플레이에 적용시켜도 조화롭고 통용되며 병행된다. 그 속성은 서로 서로 연결되어 있고, 결국 그것들이 추구하는 방향은 '관계의 확인과 완성'이라는 같은 목적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랑이 바탕이 된 의미 부여야 한다는 것. 그림을 한 장 그리더라도 인물, 풍경, 장면을 표현함에 있어 붓질 한 번, 한 번이 별생각 없는 시간으로 끝나버린다면, 그 그림은 기술만을 요구하는 모사에 지나지 않는다.
그 인물, 풍경, 장면에 나만의 이유, 상상과 멜로디, 이야기 등의 의미를 부여한다면 붓질 한 번, 한 번의 시간이 사랑이 되며 더 나아가 영혼을 담는 것 아닐까?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작품에서 영감과 감동을 얻는다.
플레이를 하는 이유가 쾌락만이 최우선 된 말초적인 관계, 단지 플레이를 위한 플레이 시간은 욕구가 원하고 몸이 느끼니까 한두 번이야 즐겁긴 하겠지만, 그 관능이 지배와 복종이라는 상시적 수직관계에서 지속반응하고 더욱 고조되는 나에겐 결국, 저렴한 쾌락은 마음속에 불편함과 공허만 남길뿐이다. 나만의 소신과 철학, 창의적 의미를 담아 플레이를 하는 이유는 나에게 플레이란 내가 그리고 있는 관계의 붓질이며, 관계의 보완과 유지라는 건설적인 이유가 더 크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다 보니, 때론 좋아하지 않아도 해야 하는 플레이를 필요로 할 때도 생긴다.